경진의 하루를 상상하며_
박경진 《untitled: 많은 이름들이 이루는 이야기》를 위한 글





2025. 12.10. - 12. 16.
공간 파도, 서울 마포구 고산7길 23 1층

서문과 글: 강다원
모더레이터: 최수연

Film
글과 출연: 박경진
연출 및 편집: 조한결
촬영: 안성요
촬영팀: 신현하

디자인: 박현지
전경 촬영: 신유진


경진의 하루를 상상하며

 경진을 다시 만난 것은 2024년 겨울이다. 그로부터 6년 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대학생이었다. 몇 년 전 유행하던 휴대폰 카메라 앱의 필터를 끼운 듯한 화사한 기억 속에 경진이 있다. 그리고 경진은 닫힌 필터를 깨고 오늘에 소환된 사람이다.
 2025년의 초입에 경진은 12월에 전시를 열 것이라 말했다. 작가는 경진 하나뿐이었지만, 그렇다고 개인전은 아니라고 의미심장한 단서를 주었다. 이것을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경진은 전시될 작품이 본인만의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조금 흘러 이 전시에는 ‘프로젝트’라는 인덱스가 붙었다.
 그는 함께 편지를 쓰자며 제안했고, 나에게는 별도로 서문과 ‘글’을 부탁했다. 작가론도, 전시 평론도 아닌 전시에 필요한 글은 내겐 무거운 과제였다. 이 프로젝트에는 나와 경진이 봄부터 가을까지 동안 주고받은 편지와 서문도 함께 수록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글을 가장 마지막에 붙들고 있다.
 글을 쓰는 11월의 언저리에서 경진과 함께했던 올해를 돌아본다. 글에 덧붙이는 어떠한 수식어도 없이 경진을 쓴다. 필진과 작가, 혹은 기획자와 작가, 미술계 동료를 넘어 친구 대 친구로서 경진을 향한 글을 남기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하루를 상상한다. 내가 아는 경진에 관한 정보를 나열하고, 또 멀리서 그를 떠올린다. 경진의 하루를 그리기 위해서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의 경진을 설명할 것인지 필요하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 내내 그가 가장 오래 머물렀을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의 올봄 그리고 여름의 불특정한 하루를 떠올린다.

 경진은 서울에서 전주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전주 버스터미널로 이동한다. 미끄러지는 버스에서 그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친구, 선후배, 동료, 미술계 작가와 기획자들의 전시 소식을 읽는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전시를 열심히 보러 다니는 사람 중 한 명이므로. 서울에 올라오는 날짜에 맞추어 방문할 수 있는 전시를 고른다. 서대문구, 마포구, 종로구, 중구 등 하루에 여러 개의 전시를 둘러볼 수 있는 동선을 계산한다.
 전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조금 걸은 다음 ‘시외버스터미널’ 혹은 ‘금암동 주민센터’에서 383, 385, 1001, 1002 등의 시내버스를 탄다. 서울에서 그는 기후동행카드 단기권을 구매해 사용하기에, 일반 교통카드로 바꾸어 탑승한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 철길’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정류장에서는 도보로 10분 정도, 한적한 거리에는 공장이 있다. 경진은 인부와 나란히 길을 걷는다.
 작가들 작업실은 레지던시 건물 1층이다. 경진의 작업실에는 넓은 창이 나 있다. 바깥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와 식물들이 우거져 있다. 환한 햇빛이 들어온다. 출입문에서 오른쪽 벽에는 지난날 다녀온 작업 중인 사생이 붙어 있다. 거대한 120호 종이다. 따뜻해지기 전 방문한 어떠한 산의 풍경이다. 마른 바위와 나무가 우거진 풍경이 그려져 있다. 경진은 주로 사생할 때 숲에서 그린 작은 드로잉북을 토대로, 작업실에 돌아와 큰 종이에 다시 그린다. 먹과 아크릴을 사용한다. 야외에서 한정된 재료로 빠르게 그려낸 드로잉은 작업실이라는 여유 있는 환경에서 재구성된다. 작업실에는 시끌벅적한 음악이나 영상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대체로 고요한 음률이 흐른다. 이따금씩 울리는 휴대폰 알람도 기다렸다가 한두 시간에 한 번씩 확인한다. 알람보다 더 자주 커다란 창의 외벽을, 나무는 치고 간다. 경진은 160 중반 정도의 키이다. 그가 남기는 그림은 대체로 경진의 키와 비슷한 크기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찾아오는 저녁에 그의 방에서 다섯 걸음만 걸으면 있는 공용 주방으로 향한다. 냉장고에는 각각의 작가 것을 표시하는 메모들이 가득하다. 경진은 저녁을 먹는다. 공용 주방의 가스레인지를 켜고 간단하게 요리한다. 가끔 다른 작가들이 주방에 와서 말을 건다.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왜 이렇게 작업실에 안 나오세요. 요새 전시하시는 것 있으세요. 작업은 잘 되세요. 저녁은 무엇을 드세요. 작가님은 오늘도 OO를 드세요?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간다. 경진은 밥을 먹고 바로 뒷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다섯 걸음을 걸어 작업실로 돌아온다. 이제 햇빛 사이로 비추는 나무의 흔적은 사라진다. 어둠이 땅과 가까워진다. 경진은 그리던 사생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고요한 공기들 사이에 더 그려야 할 부분을 찾는다. 혹은 더 손대지 말아야 하는 영역을 빠르게 물색한다. 그의 옆에는 바퀴 달린 선반 위에 아크릴, 동양화 붓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팔레트에는 그림에 찍힌 것과 동일한 색의 물감이 어지럽혀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칸칸이 들어선 아크릴 물감과 먹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경진은 정리를 잘한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쪽 벽 가까이에는 통제할 수 없던 물감 방울들이 튀어 있지만. 거대한 창문과 마주 보고 있는 기다란 책상, 그 위에 놓인 지난날의 드로잉북, 사생을 갈 때면 사용하는 팔레트, 그곳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와 나뭇잎, 솔방울, 돌멩이, 흙은 투명하고 작은 병에 담겨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경진은 이따금 작업을 멈추고 그것들을 다시 꺼내 본다. 가끔은 사생을 다녀왔던 시기보다 훌쩍 지나 수분이 바싹 마른 나뭇잎이 진공의 상태로 그를 응시한다. 여전히 고요한 음. 음악은 없거나, 있을 수도.
 경진은 휴대폰 시계를 본다. 오후 8시가 넘어서면 그는 작업을 정지할 것이다. 아직 하반기의 전시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았다. 그래도 경진은 왠지 조급하다. 많은 작업을 해두어 그중 몇 가지를 선별하고 싶다. 조급한 마음을 지운다. 다른 작업실의 사람들은 이미 떠났을 수도, 혹은 오늘 오지 않았을 것이다. 레지던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타 지역에서 온 작가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 경진은 붓을 정성껏 세척한다. 혼탁한 물이 맑게 될 때까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마무리한다.
 어두운 밤이다. 낯익지만 낯선 두려움이 도는 길을 걷는다. 경진의 숙소에는 일 년 동안만 사용하기 위해 마련된 종이 가구들이 가득하다. 임시라 부르기에 적합한 최소한의 생활용품과 가구 속으로 그는 걸어 들어간다. 센서 등은 인사를 한다.
 경진은 봄에서 여름께 사생할 때면 빠르게 치솟는 해의 시간을 피해 일찍 집에서 나선다. 사생을 갈 때 다른 사람들은 약통으로 사용하는 아크릴 박스에 물감을 준비한다. 뜯어서 쓸 수 있는 드로잉북 한 권도 챙긴다. 작은 찌그레기들을 담을 공병도 여러 개 챙긴다. 튼튼한, 그러나 흙이 묻어 있는 운동화를 신는다. 아침 여섯 시가 되기 전 가뜩이나 조용한 전주의 거리를 통과한다. 전주에 머무는 동안 그는 모악산 사생을 두 번 다녀왔다. 팔복예술공장에서 모악산까지는 거리가 꽤 있다. 문득 나는 그가 레지던시에서 모악산까지 ‘어떻게’ 갔는지 수많은 대화에서 단서를 찾으려 애쓴다. 전주의 ‘팔달로 예술문화회관’ 정류장에서 970번 버스를 타면 한 번에 모악산까지 갈 수 있다. 경진은 970번 버스를 탄다.
 날은 밝아진 지 오래다. 슬슬 더워지는 기분이 든다. 경진은 부지런히 발을 옮긴다. 누구도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숲을 걷는다. 무언가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앞서, 정해진 일과처럼 숲의 길을 처리한다. 그 처리의 과정에서 발견하는 것은 의외로 사소한 것들이다. 경진은 그 속에서 산의 능선이나 빽빽한 나무처럼 장엄한 것 대신, 자신이 밟고 선 땅 위에 떨어진 자갈과 이파리들을 그린다. 가져온 플라스틱 팔레트에는 색이 많지 않다. 실제 눈앞에 있는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다기보다는 그럴듯한 형체를 만들어 나간다. 드로잉북 위로 한 번 물감이 지나가면 지우거나 바꿀 수 없어서, 그가 남기는 흔적들은 그대로 나뭇잎과 돌멩이, 나뭇가지로 박제된다. 어떤 것을 그려야지, 생각한 다음 발걸음을 멈추고 도구를 꺼내 그림을 완성한다. 약 15분 안에 ‘모든 것’이 끝난다. 그 모든 것을 간직한 한 장의 드로잉은 작업실로 가서 커다란 장지에 옮겨질 것이다. 그러나 경진은 이 숲에서는 그것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 것을 그리기에도 바쁘다. 어제의 여유로웠던 작업실과 달리 이곳은 온통 그릴 것 투성이다. 드로잉북은 이따금 나무에서 떨어진 물방울이나 불현듯 닥친 바람으로 인해 군데군데 구겨진다. 경진은 또다시 걸음을 옮긴다. 발바닥에 닿는 돌의 딱딱함, 흙의 푹신함, 잎의 미끄러움을 연속적으로 느끼면서 나아간다. 경진은 위로 올라가는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시간은 앞으로 흐르는 것일까, 뒤로 흐르는 것일까. 시계를 최대한 보지 않는다면 해의 움직임으로 지금을 가늠할 수밖에 없다. 경진은 땀을 흘린다. 그의 땀은 땅으로 사라진다. 그의 일부는 숲이 된다.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한다. 길지 않은 그리기와 짧지 않은 탐색이 계속된다. 정오를 넘긴 시간, 그러나 저녁은 되지 않은 언저리에. 다른 사람들이 주로 숲에 머물지 않은 평일에 그는 산을 벗어나기로 한다. 언젠가 또 다른 전시를 위해 모악산을 찾을 수도 있겠지. 경진은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그는 같은 땅을 밟을 수 없다. 오늘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사생을 한 날 경진은 다시 같은 길을 되짚어 작업실에 돌아 온다. 정확히 같은 길은 아니지만, 똑같은 정류장에서 같은 이름의 버스를 타고 전주에 돌아 온다. 작업실에서 그는 다시 정리를 한다. 그에게 하루 사생의 정리는 무엇일까. 먼저 드로잉북을 제자리에 놓거나, 혹은 드로잉북을 다시 연다. 낱장으로 뗄 수 있는 종이를 묶음에서 분리한다. 그리고 소중한 물건처럼 넣어 온 유리 공병들을,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병에 가까이 둔다. 오늘의 사생 기록이니 메모를 철저하게 남긴다. 흐트러진 드로잉들을 민감하게 정돈한다. 하나의 의식처럼. 오늘은 사생을 다녀왔으므로 작업실 벽에 걸린, 그의 시선에 닿는 큰 장지 작업은 미루어 둔다. 경진은 피곤하고, 또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 어제와 같은, 정확히 같은 길은 아닌 공장 단지를 지나 숙소에 도착하면 해는 이미 넘어간 다음이다.
 경진은 그러한 하루를 수십 회 반복한다. 드문드문 가는 서울, 그곳에서 열리는 아는 이들의 전시, 혹은 본인이 참여하는 전시는 요철 같다. 그는 서울에 올라올 때면 사람들을 만나 대화한다. 작업실 혹은 숲에서와는 다르다. 전주에서 대화의 대상은 이전의 드로잉이나 지금의 그림이다. 그는 그림으로 응답한다.

 서울 동대문구의 좁은 집에서 경진의 하루를 상상한다. 경진 혼자로 만들어가는 빈틈 없는 하루가 벌어진다. 12월의 어느 프로젝트는 빼곡한 날-섬유를 뜯는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경진이 그동안 산과 작업실로 축약되는 하루를 되풀이하는 동안, 그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지. 그의 감정을 잠시 고민한다. 나열하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의 하루는 통화연결음만 흐르는 전화 부스같다. 그와 편지를 주고 받은 7개월, 그리고 처음 전시를 열겠다고 말한 올해 초, 혹은 그 훨씬 전부터, 시간을 거슬러 다시 오늘까지 경진의 하루에는 사생이 침투해 있다. 편지의 끝에서 나는 경진을 두고 동료애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먼 곳에서 글로 나눈 응답을 기억한다. 어쩌면 미술을 붙든 채 통화연결음만 듣는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면서, 오래 염원하는 어떠한 답변을 함께 기다리기로 한다. 나 또한 경진의 다음 회신을 기다리며, 마침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