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0. - 07.05.
예술공간 의식주,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80 2층
작가: 김모연
주관 및 주최: 예술공간 의식주
서문: 강다원
후원: 202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주체
사전과 사후 여백
김모연의 그림을 본 감상자들은 이렇게 느낄 것이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들, 자연이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풍경들, 움직이고 있지만 굳어 있는 신체들, 발생할 수 있지만 허락되지 않은 일들. 도끼로 목을 내려치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장면들은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폭력적인 장면이 아니라 작가가 구축한 사후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매끈한 스크린에서 보는 그의 작업에 맺힌 점들은 글리치 노이즈(Glitch Noise)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은 거짓된 이미지마저도 완전무결한 고화질로 만드는 세상이지만, 점묘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는 사실을 알려주듯이 즉물적인 필터를 한 겹 씌운다. 낯선 자와의 만남과 대화, 영혼의 소실, 분실된 영혼이 도착하는 장소가 담긴 김모연의 그림이 시사하는 미지는 우리와 가깝고도 먼 미래이면서 동시에 과거이기도 하다.
김모연이 그리는 사후세계로의 진입은 죽음 이후에 발생하는 사건이다. 이는 하나의 역설을 만든다. 죽음이 우리 생애의 마지막 경험이라면 사후세계는 생후 첫 경험이다. 처음 일어나는 사건은 멀고도 가까운 미래, 혹은 과거라는 모순을 가능케 한다.
역사적으로 예술가들은 종교의 초월적 존재와 미지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가장 익숙한 소재를 선택해왔다. 창조주, 예수, 천사,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의 얼굴을 갖추었다. 김모연 역시 가장 가까운 몸과 저장된 눈의 기억을 담아, 미지의 텍스트가 서술하는 세상을 그려 낸다. 기독교의 성경, 그리스·로마 신화, 불경전, 이슬람의 코란(Quran), 힌두교의 슈루티(Sruti), 스므라티(Smriti)처럼 다국어로 번역되어 유통된 교리들을 여러 번 들어 보았을 것이다. 김모연은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이렇듯 다수의 신자들이 믿는 교리를 참고하지만, 부두교나 사이비 종교처럼 원시적이고 이단으로 불리는 종교들도 불러 낸다. 한편,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세 개의 붉은 말은 켈트 신화에서 착안하였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인간은 마오리 신화로부터 출발했다. 〈남쪽을 지키는 개〉는 이누이트 신화를 참고한 작업이다. 이렇듯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나 신화를 포함해 아직 시각적으로 재현되지 않은 낯선 이야기를 다룬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독립된 이야기들은 작가의 기법을 거쳐 마치 통합된 세계로 모여든다.
점 사이 공백
작가는 죽음 이후 시간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의문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그 동기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는 사적인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수많은 신화와 교리를 탐독하면서, 그들을 회화로 펼쳐 내려는, 파악을 향한 집착으로 나아갔다. 사후세계를 감각할 수 없는 상태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소재는 텍스트였다.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신들과 악마들은 모두 여성의 몸으로 그려진다. 누군가는 군림하는 존재로, 누군가는 처벌받는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전통적인 종교 도상의 이분법인 선과 악, 흑과 백의 구조는 이곳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작가가 다루는 종교 중에는 명확한 심판의 과정이 없는 것들도 있고, 아직 재현되지 않는 텍스트이므로 선악의 기호적 구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끼로 목을 내려치는 회화 역시, 그것이 심판인지, 형벌인지 혹은 다음 단계로 가는 과정의 일부일지 알 수 없다. 사후세계는 그러한 가능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작가는 물감이 스며드는 장지에 아크릴 과슈로 점을 찍는다. 점이 잘 보일 수 있도록 보색을 교차시키기도 한다. 붓으로 그린 그림은 상과 상 사이를 가로지르며 면을 나누지만, 점은 대상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틈은 조밀한 점과 여백의 단위가 비집고 들어가며, 존재의 피부와 체온을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 둔다. 각진 사물이 아닌 빼곡한 입자로 표현된 점묘화는 김모연이 표현한 악마와 천사, 신과 인간, 심판과 과정의 체계가 삭아든 세계로 진입한다.
미지의 형상
전시의 제목인 《Styx》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저승의 마지막 강을 뜻한다. 이 강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경계이자 죽음 너머로 가는 관문의 장소이다. 스틱스 강을 넘게 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신화는 죽음 너머의 세계를 어두운 미궁의 환경으로 만들어 둔다. 하지만 작가의 회화는 사망의 공포나 알 수 없는 곳을 향한 두려움을 쪼갠다. 우리 삶과 비슷하게 현현된 낯선 장소를 찍어 낸다.
한편으로 그림의 존재들은 외계에서 온 존재 혹은 미래의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의 회화들은 단순히 종교화라기 보다는 사변적 상상력을 내재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사후세계(종교), 먼 미래, 외진 행성부터 기원전의 아득한 세계까지, 가늠할 수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시작은 그 순간의 몸과 정신이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과거의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기술이 만든 거대한 세계관 속에서, 죽음이라는 미스테리를 현재의 몸으로 감각하고 이해하려 애쓸 뿐이다. 그 원시적인 질문과 해답은 원을 그리며 다시 이곳으로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