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5. - 05.17.
예술공간 의식주,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80 2층
작가: 이유빈
주관 및 주최: 예술공간 의식주
기획 및 서문: 강다원
포스터 디자인: 이혜지
후원: 202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주체
#연결과 열림
‘매개’를 언급하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우리는 매개라는 단어를 자주 어렵지 않게 사용한다. 그러나 매개가 두 가지 이상의 사물, 사건, 인간, 심지어 시공간의 중간 지점의 연결고리를 의미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 폭넓은 단어를 적재적소에 활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더불어 매개는 ‘medium’으로 번역되고, 이는 ‘materials’와 함께 물질적 재료를 영문으로 쓸 때 가장 많이 사용된다는 사실은 단어를 점점 더 남용하게 한다. 예술에서 매개는 머릿속 생각을 인지할 수 있는 존재로 발현된 것으로 넓게 언급되며, 사물, 소리, 빛, 인간의 동작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인 것이다.
이유빈이 전시 공간에 가져다 둔 사물들에 대하여 매개라는 모호한 단어를 쓰는 데에는 분명함과 조심스러움이 공존한다. 이곳의 작품은 작가의 의문과 태도를 전달하려는 매체가 된다. 그러나 세밀하게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작가 본인이 특정한 질문을 전달하고 그 궁금증을 실제 대상에 투영하려는 매개자임을 알 수 있다. 무수한 매체의 의미들 사이에서 좀 더 집약적으로 이 현장을 바라본다면 어떤 태도를 도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엉성하게 보였던 복수의 사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관계를 도출하는 것이 매개의 역할 중 하나일 수 있다. 엉성하고 인과적이지 않아 보이는 두 사건을 떠올려 보자.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졌고 등장하는 사람들도 서로 무관해 보인다. 그러나 이 독립된 환경이 어떤 계기로 인해 연결되었을 때, 그리고 특히 정치적인 역학 관계에 놓여 있을 때 종종 ‘커넥션’이나 ‘게이트’¹라는 명칭을 덧붙인다. 마치 연결로 인해 새로운 해석의 문이 열리는 과정인 것처럼 말이다.
#풍경이 삼킨 개인
취미와 노동, 수작업과 자동화, 기계와 영혼. 이유빈은 대척점에 놓인 영역의 틈에서 그 간극을 좁히는 사물을 통해 벌어진 시공을 접촉한다. 작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작동하고 있으며, 안전해 보이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 실체 없는 불안을 일으키거나 의심의 징조가 되는 환경이다. 그중에서도 이유빈은 오늘날의 자동화 기계를 만들기 위해 동원되었으나 지금은 잊힌 노동자들을 포함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영혼의 힘을 투영시키는 사물들과 같은 소재를 환기하면서 일견 자연스러운 현재까지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잊힌 노동자들은 역사적으로 기록될 필요가 없기에 잠들어 있으며, 견고한 성물은 사실 그것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을 피하고자 거듭 허울뿐인 의미를 부여하는 사물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확언의 역사나 믿음은 반대의 의견을 고립시키면서, 언젠가는 터질지 모르는 의심을 잠재시킨다. 이유빈은 믿음과 불신, 기록된 역사와 휘발된 기억이라는 대척점을 매개하며 잠든 요소들을 꺼내 놓는다.
〈Pattern Recognition-Phase 1: Automas〉와 〈Pattern Recognition-공과 공〉은 19세기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에서 단순 계산을 위해 저임금으로 고용된 여성 노동자 혹은 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 시기, 가발 공장 여공들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오래된 사진을 통해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위대한 인물들은 그들의 초상과 이름들로 함께 호명되지만, 이유빈이 자수로 새긴 이미지 속에서 노동자들의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무명의 행위자로 가득한 외피의 이미지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약적이고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섬유 제작의 노동이 밀집된 결과다.
스킬자수는 1997년 고시되어 2000년에서 2013년까지 적용되었던 7차 교육과정의 실과에 포함된 수업이다. 이유빈은 과거 실생활 능력 향상을 위해 배웠던 스킬자수의 방법이 사실은 1960~70년대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한 가발 공장에서 이루어진 가발 생산 방식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여가와 취미로 인식되었던 스킬자수를 과거 고된 노동 환경의 역사와 연결한다. 시차를 두고 벌어진, 직접적인 경험과 간접적인 역사는 스킬자수를 거쳐 엮인다.
〈CQ〉는 비밀스럽고 소중한 자료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작가가 이 오래된 책상을 불러 와 새긴 것은 모스부호인데, 이것은 앞의 자수 작업과 마찬가지로 세계대전 때 모스부호로 암호를 수발신한 여성 송수신자(무선사)의 존재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비공식적인 암호를 전달하기 위해 동원된, 실제로 살아 있었던 노동자들의 존재처럼 비밀의 책상은 반쯤 열려 있다.
한편, 실체 없는 종교와 신념을 향한 믿음으로 가기까지의 여정을 떠올려 보자. 사람들은 오랜 역사가 전해온 이야기를 복기하면서 특정한 사물에 이야기를 대입시키거나, 희귀한 물체에 숭고함을 부여한다. 전시장 곳곳에 비치된 북어와 원석은 죽어 있는 사물이다. 그러나 이미 죽어 버렸기 때문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해도 반박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의문을 제기하고, 말을 걸고, 떠나는 것들은 대부분 살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오랜 비밀을 지킬 수 있는 견고한 성물이 될 수 있다. 믿음을 간직한 사물과 함께, 반대로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는 사물들은 커튼이나 캐비닛에 일부만 가려진다. 여기에는 몇 가지의 관념이 충돌하고 있다. 그것은 액운, 행운, 안도라는 불확정한 상태를 다스리기 위한 실체 있는 사물을 향한 믿음, 그리고 커튼 뒤나 서랍 안에 잠들어 있는 멈춘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현장의 생생한 호기심이다. 하나는 오랫동안 지난한 과정을 겪었으며 다른 하나는 생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사물에 부여하려는 연약한 믿음 사이의 단계는 호기심에 의해 재건되고, 의문에 의해 파괴된다는 점에서 관찰자의 마음속 관문을 계속해서 넘나든다.
#배회하는 영혼
스킬자수 작업, 낡은 책상과 모스부호, 오래된 사물과 닳은 믿음은 모두 구식으로 여겨진다. 집약적인 노동의 행위와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언어는 더이상 발전되지 않고 본체를 변형하지 않은 채로 소환된다. 버스 안내양, 전화교환원, 엘리베이터 걸, 사라진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되었으며 기술이 자동화되기 전 인간 스위치로 존재했다. 이유빈이 지금의 현장과 연결하는 것들은 대체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면서 눈에 저장하지 않았던 중간 지대의 사람들, 혹은 반대로 무수한 사람들의 이동과 접촉을 통해 형성된 보이지 않는 믿음이다.
《내 옷장 안의 용》은 갈수록 축적된 기술이 만드는 매끄러운 효율성, 멈추지 않는 움직임이 남긴 잔재들을 검토한다. 전시의 제목은 칼 세이건의 저서 The Demon-Haunted World: Scient as a Candle in the Dark(1995)에서 제시한 ‘차고 속의 용(The Dragon in My Garage)’에서 출발한다. 옷장은 장르 소설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통로로 묘사되고, 용은 상상의 동물로, 전시의 제목은 호기심을 통해 닿을 수 있는 숨겨진 세계처럼 읽힌다. 그리고 이유빈의 시선에서 이 전시의 제목은 효율과 합리가 들어찬 세계(옷장)에서 남겨진 의문의 감각과 흔적(용)으로 번역할 수 있다.
우리는 어디선가 들리는, 낡고 반복된 목소리를 미미하게 기억하며 불운을 피하기 위해 미신 행위를 반복한다. 또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생성형 알고리즘 프로그램과 대화한다. 배우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다른 물질과의 접촉은 기억되지 않은 매개로 환원된 현상이 아닐까. 지금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히 존재한 매개자들은 영혼의 형태로 지금의 기계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유빈은 베일에 싸인 반투명한 영혼들과 선명한 인간들 사이에 서서 끊임없이 그들과의 연락을 취하고 있다.
¹ 정치적 스캔들의 용어로 사용되는 ‘게이트(Gate)’는 본래 ‘출구’나 ‘문’을 의미하지만 1972년 미국의 ‘워터게이트(watergate)’ 빌딩에서 일어난 정치적 스캔들을 기점으로 비리 의혹 사건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