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9 - 12.30.
예술공간 [:틈],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31길 6, B1
(현재: 서울 마포구 망원로 57 2층)
작가: 서지희
포스터 디자인: 김소이
주관 및 주최: 예술공간 틈
이탈리아 미래주의 화가들은 근대 도시 환경의 역동성과 빠른 속력으로 작동하는 기계 문명에 반응하며 다수의 회화를 남겼다. 이 시기 회화에서는 고층 빌딩과 터널처럼 도시 안팎을 관통하는 분주한 움직임, 그것이 유발한 인간의 ‘현기증’이 복합적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설립보다, 옛것의 파괴와 재건이 더 익숙하다. 도시 환경은 더 이상 생경한 혼란을 제공하지 않기에, 우리는 도시의 진동과 복잡함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하며, 급속도로 무너지고 세워지는 도시 안에 자리할 뿐이다. 한 편, 그러한 보편적인 혼란을 향한 민감한 반응으로, 서지희는 불안을 늦추기 위한 섬세한 ‘그리기’를 실천해 왔다.
침착한 색연필
서지희는 외부에서 침투한 예민함으로부터 작업의 축을 세운다. 그에게 있어 ‘그리기’는 통제할 수 없는 세계를 잠재울 수 있는 혼자만의 행동이다. 감정과 환경의 통제 불능은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재료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2022년 단체전을 전후로 줄곧 색연필을 다루어왔는데, 아크릴 물감도 사용하기는 했지만, 붓보다 경도가 높고 반듯한 선을 그을 수 있는 색연필은 그에게 적절한 도구였다. 색연필을 다루는 수고스러움은 작가에게는 침착함을 연습하는 행위다. 각각의 색 선들이 면을 이룰수록, 작가는 안정의 시간을 보낸다.
색연필의 반복된 움직임에 앞서, 작가는 대지 위에 통제 불능한 세계를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구축한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되돌리기(Undo)’는 작업 전 스케치를 할 때 가능해지는데, 먼저 작가는 그릴 것을 선정한 다음, 안정적인 구도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친다. 주로 이 안정적인 구도는 9분할된 그리드(Grid) 안에서 형성된다. 아이패드를 활용해 9분할 격자 대지를 설정하고, 직선과 도형을 활용해 그가 본 풍경을 스케치한다. 디지털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레이어를 더하고 빼며, 시각적으로 편안한 구도와 색감을 배치한다.
〈선라이즈〉(2024)는 사방으로 발광하는 햇빛 아래, 낮의 풍경을 위의 방식대로 묘사한 회화다. 사방으로 발광하는 해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은 직선과 타원이 되어 견고하게 하늘에 걸린다. 도형들은 각 요소(해, 구름, 강물)의 상징을 넘어, 조합되었을 때 익숙한 풍경을 상기시킬 수 있는 모듈처럼 기능한다. 연속된 시선을 면으로 나누고, 작가는 색의 선택과 배치를 고려한다. 프렌치 그레이(French Grey) 톤에 포함된 색연필을 사용하여 균일한 채도로 화면을 만들어 나간다. 조색할 수 있는 물감과 달리, 생산된 색연필의 색채 스펙트럼 안에서 화면을 메워 나가는 것은 그에게 한계가 아닌 안정으로 향하는 길이 된다.
비교적 가까운 시선에 닿은 사물들을 그린 〈한 접시의 마음〉(2025)과 〈하나씩 빠지고〉(2025) 역시 동일한 과정, 화면을 나누어 안전한 위치를 찾는 과정을 경유한다. 이는 사물을 안전하게 보이게 하는 목적과 함께, 작가 스스로 불안한 상태를 화면 안에서 해소하려는 의도를 동시에 지닌다.
조용한 구조
〈보행자 구역〉(2025)에서는 그가 바라보는 대상이 인공적인 소재에 가닿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업은〈선라이즈〉(2025) 속 화면의 그리드를 중심으로 풍경을 번역하는 행위보다는, 도시 보행 환경의 표지를 그대로 옮긴 듯 보인다. 일상의 기호화된 표식은 서지희가 행해 온 도형으로의 치환을 상기시킨다. 한편, 이 작업은 어쩌면 이번 전시, 근래의 작업을 독해하기 위한 단초로 읽힌다. 이 회화를 전후로 줄곧 평화로운 풍경이나 사물의 배치, 따뜻한 일상으로 보였던 그의 회화는 감정적 안온함보다는 더 계산된 그리기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풍경이 원형(原形)의 도형으로 표현된 것은 유효하다. 그러나 앞의 작업에서, 작가가 그린 격자 속에 도형으로 변환된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했다면, 〈녹색 삼각형과 핑크색 면〉(2025), 그리고 〈격자 내부의 원, 삼각형, 아치〉(2025) 등 장소를 알 수 없는 추상의 그림은 작업 초반 단계의 화면 분배를 전면에 드러낸다. 프렌치 그레이 스펙트럼 내에서 표현된 명암 단계는 서서히 사라지고, 뚜렷한 소실점과 선이 남아 있다.
소제목으로 참조한 ‘조용한 구조’는 작품의 제목으로, 선행된 변화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건조한 색연필의 질감, 완성된 회화가 내리쬐는 햇빛, 오래 보아도 안정적인 어느 평온한 하루는 관객에게도 유사한 감정을 전달해 왔다. 새로운 경로를 따르는 회화는, 개인에서 시작된 파동이 치밀한 설계를 거쳐 알 수 없는 장소를 추측하게 만들게 한다. 그리고 여전히 작가는 주된 재료로 사용하는 색연필로 ‘칠하기’의 본분을 충실히 따르면서 면과 면을 선명하게 구분 짓는다. 그림에서 생략된 특정성, 즉, ‘언제, 어디서, 무엇’이라는 정보는 대체 텍스트처럼 지어진 제목처럼, 보편적인 도형과 색채만으로 추려진다.
서지희의 작품은 분명한 세상에서 기인한 감각에서 출발하였으나, 결론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형태에 닿는다. 그의 회화는 입,출력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엉망의 명령어’를 함의한다. 공교롭게도 ‘엉망의 명령어’라는 전시 제목에는 ‘이응’과 ‘미음’이라는 원과 사각의 자음이 거듭 등장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엉망’은 ‘무질서’와 ‘혼란’처럼, 작업의 시작이 되는 일상적 감각으로, ‘명령어’는 그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입력값이라 볼 수 있다.
작가는 그만의 회화 기법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엉망의 명령어를 반복했으리라 짐작한다. 하나의 패턴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그 일부에서 또 다음 작품을 연장하는 것은 대부분 작가들이 겪는 수고스런 여정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서지희의 회화는 각자에게 주어진 혼란한 환경을 긍정하는 위로처럼 느껴진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우리 외부로부터 작용하는 현기증을 잠시 내려놓기 위해, 정리된 마음과 고운 색연필로 쌓아 올린 조용한 구조들을 응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