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 31 - 08. 14
술술센터, 서울
후원 | 영등포문화재단
참여작가 | 김민철, 이서경
포스터 디자인 | 다우닝블루
전시 리뷰 | 콘노유키
언제나 어떤 완전한 힘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일상의 삶 속에 그대로 잠들어 있는 여러 가지 감성들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자극제일 수 있다.[1]
섬과 산
섬과 산이 무엇인가? 익숙하고도 모호한 장소를 두고 질문한다. 도시의 복잡함이 부재한 지역 혹은 가장 안전한 구역이 될 수 있다는 모호한 답변이 조심스럽게 등장한다. 섬과 산으로의 여행을 머릿속에 그릴 때 유배의 공간과 낭만의 추구라는 대립한 두 의미가 거의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서경과 김민철의 섬과 산은 두 해석 중 어느 곳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없다. 이들에게 섬과 산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둥그렇게 솟아 있는 흙이나 바위 더미의 형체보다는 어떠한 동작에 가깝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떨어져 있는 두 공간을 함께 설명하기 위해 ‘자기 인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섬과 산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을 매개하고 두 지역이 이어져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들며 끝없는 인식의 고리처럼 종착지 없는 여정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르니에의 표현을 빌려 여행이 일상 속 잠재된 감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자기 인식의 배경과 행위를 아우르는 섬과 산은 이서경과 김민철의 그리기에 가장 필요한 과정을 잘 비유할 수 있는 단어일 것이다.
들어갈 수 있지만 무엇이 있을지 짐작하기 어려운 곳. 섬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육지와 떨어져 외로이 있다는 점에서 환상적인 시공간[2] 혹은 기억의 여행을 위한 장소[3]로 기능해 왔다. 반면 산은 섬보다는 생명이 살 수 있는 곳, 계절의 순환을 느낄 수 있는 생기로운 장소처럼 느껴진다. 이서경과 김민철은 섬과 산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일부 가져오지만, 회화의 대상이나 배경으로 차용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여러 의미를 간직할 수 있는 장소로 바라본다.
《섬과 산》에서 두 작업 세계로 떨어져 있던 섬과 산은 한 곳에 만난다. 불특정한 공간들은 누군가의 시선에 들어온 목표 지점이 아니라 두 작가의 끊임 없는 사유의 과정을 실어 나르는 이동하는 물체가 된다. 이에 따라 전시는 외따로 나아가던 섬 그리고 산, 이서경과 김민철의 세계가 한 시공간에 마주하는 사유의 교차로이다.
이서경의 가라앉는 섬
‘거품 섬’은 이서경의 회화 세계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거품이 빠르게 피어났다가 사그라들어 액체 속으로 스며갈 동안 작가는 하루를 돌아본다. 거품은 찰나의 반짝임을 간직하고 있는 일시적인 물질로 순간성이 그 가치를 담보해 준다면, 섬은 거품보다는 무너지거나 파괴되기 어려운 단단한 대지에 가깝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가라앉는 거품과 물 위에 곧게 솟은 섬은 대치하는 듯 보이며, 둘의 만남으로 쌓아 올려진 거품 섬에는 연약하면서도 안전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서경이 그리는 거품 섬은 누군가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낭만과 환상의 영역이다. 작가는 빠른 붓질과 여린 푸른빛의 색으로 캔버스를 메우며 거품 섬을 그려 나간다. 회화에서 과정의 속도를 짐작할 수 있는 여러 자국들은 거품이 머물렀던 짧은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서경은 섬의 외형을 묘사하기 보다는, 거품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사색의 공간처럼 불분명한 형태와 꿈 같은 배경으로 섬을 표현한다. 이로써 작가는 섬을 발 딛고 설 수 있는 고독한 땅이 아닌 거품처럼 임시적으로 존재하는 사색의 자리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김민철의 영원한 산
김민철은 산이나 바다를 걸으며 발견한 사물들을 회화의 대상으로 가져온다. 부서지거나 토막난 나무나 철근들은 작가의 눈과 발을 멈추게 하는 부산물들이다. 김민철은 사물들을 연결해 수직과 수평 형태를 강조한 그림을 그리거나 최소한의 색을 사용하여 자연물의 조합으로 상상 가능한 목지의 폐허를 표현해왔다. 작가는 겨우내 숲을 덮고 있던 눈이 사라진 순간 아쉬움을 느꼈는데, 이러한 감정의 촉발은 영원히 녹지 않는 눈을 떠올리며 그린 <마음조각> 연작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의 눈 덩어리는 황량한 산의 배경에 불시착한 이상스런 물체로 보인다. 이 커다란 얼음 결정은 앞으로도 숲 안에 머물러 있을 듯하다.
<마음조각>이 일시적인 것을 붙들고자 한 자극의 결과였다면 <Nostalgic Panorama>는 지난 그림들 속 물질들을 긴 하나의 화면 속에 배열한 작품이다. 이곳에는 김민철이 지난 날 목격한 농업용 비닐, 나무 뿌리, 눈이 함께 등장한다. 작가는 완성된 회화 속 물질이 다시 전체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파노라마의 형식으로 보여 준다. 산을 재현의 대상으로만 남겨두지 않은 채, 김민철은 캔버스에 담기는 사물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자 일상과 작업의 세계를 연결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나와 너
섬은 산이 될 수 있고 산은 섬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산에 물이 가득 차올라 섬이 된 봉우리를 상상하다 보면 떨어져 있던 두 곳이 연결되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러한 이어짐은 과거-현재-미래의 연쇄적 시간대에서는 쉽게 짐작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지금 여기’의 시야에 들어와버려, 섬처럼 보이는 것을 섬이라 부르고 산처럼 다가온 것을 산이라 말한다. 이서경과 김민철에게 섬과 산은 그들의 회화 세계를 함축하는 단어이자 뚜렷한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장소였다. 《섬과 산》에서는 각자의 그림을 그려 온 두 작가가 만났다. 이제 섬과 산은 ‘자기 인식’의 상징으로서 작가들을 연결하고 둘이 맞닿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었다.
《섬과 산》은 두 작가의 세계와 그림에만 머물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드문 드문 떨어져 있는 섬과 산처럼 너와 나로 이어진 세계가 낱개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두 작가의 작업이 교차되는 이 곳에서 우리는 가장 깊은 곳에 나와 당신이 닿아 있을 것만 같은 투명한 연결을 상상한다.
[1] 장 그르니에, 『섬』, 함유선 옮김, 청하, 1999, p.93
[2]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모렐의 발명』, 송병선 옮김, 민음사, 2008
[3] J.M.G. 르 클레지오, 『섬』, 홍상희 옮김, 책세상,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