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소각하며 Burning the Letter》




《편지를 소각하며 Burning the Letter》


일시 | 2026년 7월 11일 (토) ~ 8월 2일 (일) 13:00 ~ 18:00 (월, 화 휴무)
장소 | 예술공간 의식주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80 2층)
기획 | 강다원
참여 작가 | 곽기쁨, 로렌리, 윤지현, 장새샘
포스터 디자인 | 이혜지
주관 및 주최 | 예술공간 의식주
후원 | 202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주체


《편지를 소각하며》  

✳곽기쁨 작가의 〈초고〉에서 관객은 직접 종이를 물에 녹일 수 있습니다.
✳✳로렌리 작가의 작품은 빈티지 사슴 박제와 발견된 비둘기 사체를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장새샘 작가의 엽서는 자유롭게 뒤집으며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를 시작하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프란츠 카프카의 마지막 유언·편지에 관한 것이다. 카프카의 편지는 한 사람이 몹시 숨기고 싶던 생애의 부분, 혹은 그 전부, 그들이 합창하는 비밀과 취약함이 공개되었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또 다른 방향과 힘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했다. 마지막 편지가 지닌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건 한 개인이 지닌 가장 나약한 모습과 강력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약속이 배반되자 카프카는 어쩌면 영원히 편안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시간 속에 갇혀 있는 듯했다.
 그러한 점에서 카프카의 편지는 마지막 약속의 파기, 그것이 촉발시킨 것처럼, 돌발적 경로로 나아간 텍스트와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누군가의 약점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유언의 자유', 인간은 자신의 최종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최종적 의사는 행위자가 사라진 후에만 효력을 지니고 법적인 생명을 얻는다. 죽음은 곧 탄생이다.¹ 유언의 시간은 죽음의 문지방을 밟고 시작된다. 이 역설, 발화자가 사라져야만 말이 비로소 힘을 갖는다는 것은 비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연약한 비밀이 노출되고 타인에게 닿으며 다른 역학으로 전복되는 시점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비밀 역시 그것을 쥔 사람의 손을 떠나야만, 비로소 다른 무엇이 될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닐까. 취약함은 어떤 사건인 공개, 공유, 발언, 나눔을 통해 다른 성격으로 변환할 수 있을까? 변환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로 불특정한 사람을 향한 메시지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렇듯 성질이 변화하고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의 깊은 곳에 위치한 취약함은 파고들 수밖에 없으며, 쓰일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취약함의 경로는 논리적이지도, 정합적이지도 않다.

 《편지를 소각하며》는 연약함의 쓰임과 공개가 어떠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질문 위에 세워졌다. 전시의 제목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프란츠 카프카의 마지막 유언, 즉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남겼던 편지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정작 이 전시의 제목을 이루는 '소각'은 실현되지 않았다. 브로트는 그의 모든 미공개 편지와 일기, 원고를 태워달라는 카프카의 부탁을 듣지 않았고, 그 결과로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송』(1925), 『성』(1926), 『아메리카』(1927)를 편집해 출간했다. 1939년 나치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해 브로트가 피신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그는 몇몇 원고를 제외한 『소송』을 비롯한 주요 텍스트를 계속 보관했다. 이후 비서 에스데 호페(Esther Hoffe)에게 이 문서들을 공공기관에 넘길 것을 부탁했지만, 호페는 오히려 이 문서들을 판매했다. 시간이 흘러 호페마저 사망한 뒤, 기록들은 자녀에게 상속될 뻔했으나 소송을 거쳐 최종적으로 2019년 예루살렘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었고, 현재는 온라인으로 공개되어 있다. 문서는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세대에서 세대로 거치면서 본연을 뒤덮고 있던 취약함을 벗은 채, 가치 있는 문학 혹은 오랜 논쟁으로 얼룩진 문서가 되어 있었다. 소각을 거부당한 카프카의 문서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고, 그의 생애주기와 함께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아카이브로 남아 한동안은 영속할 것이다. 자신의 손을 떠난 텍스트 꾸러미가 알 수 없는 길을 향해 나아갈 때, 두려움은 존재의 증거가 되며, 비밀의 파기는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전시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한다. 곽기쁨이 취약함을 관객의 손으로 넘겨 '읽는 행위' 속에서 풀어내고 흩뜨린다면, 로렌리는 반대로 그것을 신체 내부에 봉인하여 겉과 속의 간극 속에 가둔다. 윤지현은 상처를 표면 위로 끌어올려 빛나는 흔적으로 남긴다. 그리고 장새샘은 그 흔적을 피부, 테두리로 확장한다.

 곽기쁨은 ‘보는’ 행위를 둘러싼 질문을 던진다. 텍스트를 읽고 본다는 것, 나아가 이해하는 과정은 언어를 감각화하려는 시도로 연결된다. 예컨대 작가는 감온안료, 밀랍, 향 반죽처럼 환경적 조건에 따라 소멸하는 재료로 문장을 만들어 관객의 감상에 의해 변주되는 텍스트 기반 작업을 전개해 왔다. 이번 전시의 〈초고〉(2026)에서 작가는 수용지 위에 고백의 문장들을 썼다. 다른 사람에게 약점으로 보일 수도 있는 내용이 적힌 수용지는 관객에 의해 물에 분해된다. 작가의 손에서 타인의 손으로 이동한 취약함은 누군가의 읽는 행위를 통해 공유된다. 연약함은 다른 이에 의해 녹아 없어지며 해소되기를 바라는 소망, 다른 속성으로 재탄생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문장이 물에 풀려 형체를 잃는 순간, 비밀은 더 이상 누구의 것도 아닌 상태로 흘러간다. 눈이 쌓인 듯 어항의 바닥에는 녹은 종이가 아른거리고, 각각의 작은 비밀들은 흰 뭉치가 되어 아래로 가라앉는다.
 로렌리는 신체 일부가 기능을 잃고 붕괴되는 듯한 감각에서 출발해, 이를 복원하기 위하여 박제 기술을 배웠다. 박제의 주된 과정 중 하나는 가죽을 벗기는 일이다. 몸 안과 밖을 구분해 주는 피부는 다시 배열된다. 작가는 이를 ‘물리적 형태를 갖춘 유령’²이라고 하는데, 온전한 겉과 달리 속은 텅 비어 있거나 다른 물질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에서 빈 곳은 열려 있는 곳이 된다. 로렌리의 〈Hickey〉(2026)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한 작업이다. 박제된 비둘기 내부에는 작가의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점자 편지가 들어 있다.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점자를 알지 못했던 작가의 할아버지는 이 편지를 읽을 수 없으므로, 영혼만이 비둘기 내외부를 배회한다. 〈Tan Lines〉은 오래된 앤틱 사슴 박제물의 가죽을 뒤집어 제작되었다. 작가의 닭껍질로 만든 〈Girth of My Neck〉(2026)처럼, 피부를 뒤집고 그것을 다시 기우지만, 속은 모두 비어 있다. 떠나간 영혼은 치유할 수 없으며 한동안 공허할지도 모르는 마음이지만, 껍질을 다시 이어 붙이는 행위는 빈 곳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닿지 못하는 편지의 발신 함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윤지현은 장지에 채색 후 비단을 씌운다. 올을 풀거나 뜯는 작업을 통해 상처를 은유한다. 그의 작업에서 상처는 통증을 다른 감각으로 변환되듯, 별의 형태로 빛난다. 아이를 낳고 기른 지난 6년의 시간은 작가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아픔과 사랑, 미움과 애정, 힘듦과 기쁨, 자책과 보람. 극단의 감정은 아이를 ‘출산’한 시점부터 ‘배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윤지현의 말처럼, 본능으로 인식되는 모성이 아닌, 제어할 수 없는 사랑을 주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다. 윤지현의 회화에는 별이 된 상처, 부처의 수인(手印) 너머의 풍경이 엿보이는 등, 상이한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있다. 어떤 기점을 넘어서, 감각이 이어지기 위해 남긴 흔적은 튼살과 흉터로 남는다. 이번 전시에서 윤지현의 작업은 전시장 곳곳에 설치되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응시하는 구도로, 내밀한 상처들을 엿보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장새샘은 살아있음의 증명이면서 동시에 생의 징그러움을 드러내는 피부의 물성에 주목한다. 피부의 질감과 촉감을 연상시키는 양모로 펠트를 만든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생명체의 징그러움으로 보였던 작품은, 천천히 다가갈수록 포근하고 안락한 효과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마름모 모양의 펠트를 이어 붙이는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그간 탯줄을 통해 과거 연결된 기억을 추적하고 회귀하려는 욕망을 드러내 왔지만, 신작 〈사지로 꽁꽁 붙잡고〉(2026)은 비교적 현재 시점에서 출몰한 결과로 보인다. 한 겹의 펠트 조각은 하루 혹은 한 사람에 빗대어 진다. 장새샘은 주로 과거 혹은 원시적인 기억에서 출몰한 알 수 없는 불안과 트라우마를 다뤄 왔다. 〈탯줄로 지은 시〉(2025)와 함께 전시된 신작은 작은 하루와 세포의 군집, 즉 분절된 기억을 형성한다. 함께 전시된 〈허니문에서 부치는 편지〉는 작업 활동 전반을 둘러싼 개인의 사적인 기록을 보여 주며, 결과물 바깥에 놓인 작가의 일상에 관객을 밀착시킨다.



¹ 미쉘 그리말디·남효순, 「유언의 자유」, 『저스티스』, 147(2015), p.295
² 로렌리 작가 노트




제13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Project : Mouthless with 이지윤(Jiyoon Lee)


참여 작가×기획자:
고요손×문현정, 김예슬×강수빈, 우진×배진선, 이지윤×강다원
전시기간: 2026. 4. 10.(금) - 5. 10.(일)
운영시간: 화요일 - 일요일, 11am - 6pm
※ 매주 월요일 및 5월 1일(노동절) 휴관
전시장소: 아마도예술공간(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4길 8)
디자인: 배지선
전시 전경: CJY ART STUDIO(조준용)
주최/주관: 아마도예술공간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이 전시는 202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주체(공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Artist×Curator:
goyoson×Moon Hyun Jeoung, Yesul Kim×Kang Subin, Jin Woo×Bea Jinseon, Lee Jiyoon×Kang Dawon
Period: 2026. 4. 10.(Fri.) - 5. 10.(Sun.)
Time: Tue - Sun, 11am-6pm
※ Closed on Mondays & May 1 (Labor Day)
Venue: Amado Art Space (8, Itaewon-ro 54-gil, Yongsan-gu, Seoul, Korea)
Design: Jeesun Bae
Support: Arts Council Korea



Mouthless

Outside

 그동안 겪었던 가장 생경한 경험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몇 해 전 여름 나는 이탈리아와 가까운 남부의 몰타(Malta)라는 섬나라를 방문했다. 직항편이 없던 탓에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드문 그곳에서, 나는 19세기에 문을 연 오래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과거에서 걸어 나와 내 앞에 서 있었다. 오래 묻어 둔 감각 속에 희미했던 존재가 뚜렷하게 떠오르는 현상. 그건 알아챌 겨를 없이 어떤 포털(Portal)을 넘은 듯한 경험이었다. 옛 시공간에 박제된 사람이나 사물은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어째서'로 설명할 수 없는 불시의 마주침은 기이한 감각을 남긴다.
 한편, 평범한 일상에서도 낯선 포털로 진입했던 때가 있다. 애플워치를 착용하고 잠에 들 때, 기기는 잠자는 사이 비수면에서부터 깊은 수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일정한 시간으로 알려 준다. 감각이 잠든 상태에서 기기는 내 신체를 탐색한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렘 rem 수면 시간에 왜인지 어젯밤 꿈꾼 것 같은, 일부 조작된 경험을 후속적으로 대입시킨다. 그렇게 기기는 눈이 감긴 틈에 사용자를 관측하면서 몸에서 분리되고 주체를 소외시킴으로써, 신체로부터 독립된 제3의 시점을 획득하는 듯하다.
 사건이 발생한 증거로서, 인간의 시점을 서술하는 목격 증언 eyewitness에서 가장 큰 함정은 증언자 스스로 자기암시의 당착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¹ 목격 즉, 보는 행위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할 만한 진술의 근거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목격 증언은 범인 색출에서 오류율이 꽤 높은데, 이는 시각 정보가 객관적이지 않을 뿐더러, 자신을 향한 암시라는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위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목격자는 사건 바깥의 제삼자여야 함과 동시에, 진술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사건 내부로 깊숙이 침투시켜야만 하는 모순적 의무를 지닌다. 증언자는 일인칭 시점을 지닌 삼인칭 관찰자의 위치에서 사건을 설명한다. 보편적으로 시점은 고정된 주체의 축 위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두 가지 요인이 움직인다는 잠정적인 사실을 암시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앞서 세 가지 사례를 언급한 이유가 있다. 세 가지 이야기는 ‘하나의 위치에 하나의 시점만 존재한다’²라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균열을 내는 계기가 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특정 장소에서의 경험은 멀리 떨어진 시공간의 접촉에 제동을 건다. 두 번째, 수면 시간 동안 일인칭의 시점은 또 다른 기기로 옮겨진다. 마지막으로, 일인칭 시점의 유일성은 증언을 믿게 만들지만 동시에 현재의 증언과 과거의 기억을 분리하는 과정을 경유한다. 일상의 상황 속에서 주체와 결부되었던 시점은 특수한 계기 혹은 자연스러운 흐름에 의해 주인에게서 서서히 멀어진다.
 아마도 예술공간의 지하층에서 진행되는 이지윤 작가와 강다원 기획자의 프로젝트 《Mouthless》는 두 공간에 나뉘어 설치된다. 쇼룸에는 12분 단위로 3개 영상이 한 프로그램을 통해 구동되는 〈Gress Set〉가, 작은 정사각형 방에는 빔프로젝터로 〈Mouthless〉가 재생된다. 이 두 개의 분절은 기묘한 일상과 일상의 기묘함이라는 언어적 유희처럼 팽팽한 관계를 이룬다. 한 쪽은 불편한 감상을 이끄는 불가항의 가벽으로 포털을 넘을 수 없는 현실을 드러낸다. 다른 한쪽은 유연하게 움직이는 이미지로 메워진다. 이 둘이 나뉘는 기점은 아마도 예술공간의 지하층 초입 삼각형 공간이다. 이곳은 프로젝트가 시작하는 세트 포인트이다.

Inside

 첫 번째 공간인 쇼룸의 ①〈Gress Set〉는 12분 단위로 루프되고 〈Finite Gress〉, 〈2nd Gress〉 그리고 〈Next〉로 구성된다. 〈Gress Set〉는 영화에서 관객과 등장인물의 시점을 동기화하며 서사에 몰입을 가하는 POV 시점 쇼트의 문법³을 차용하는 동시에, 물리적 가벽을 세워 관객의 동선을 제약한다. 〈Finite Gress〉에서는 일인칭 시점인 First-Person View(FPV)를 보여 주는 손이 등장하고, 맞은 편에 위치한 〈2nd Gress〉는 퍼포머의 신체에 카메라를 고정해 촬영하는 리그 rig 방식을 부분적으로 수용한다. 영상은 이러한 요소들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앞에 선 관객은 카메라의 지속적인 움직임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한편, 공간을 가로 지르는 가벽은 자유로운 횡단을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다. 거대한 벽면은 하나였던 공간을 두 개의 영역으로 분리한다. 그렇게 분할된 위치는 시점의 분리로 이어진다. 가벽은 세 개의 영상을 동시에 조망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통합된 시점의 점유를 불가하게 만든다. 〈Next〉에 30초 단위, 실시간으로 등장하는 영상은〈Finite Gress〉 모니터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로부터 유입된다. 그러나 그 피드백 현장을 목격할 수 없는 위치에서, 관객은 불과 몇 초 전 본인이 서 있던 자리를 기억하면서 실시간의 감각을 유추할 뿐이다. 영상 속 안구가 없는 캐릭터는 눈꺼풀을 깜빡이는데, 이는 어딘가에 놓여 있을 눈의 위치를 상상하게 하며 일인칭 바깥의 시점을 떨어진 영역에 둔 채 활성화한다.
 쇼룸을 돌아 나오면 작은 방에 ②〈Mouthless〉가 재생된다. 해당 작품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짧은 영상과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이때 POV 시점은 유지되지만 AI 프롬프트는 떨어진 장소에서 촬영된 이미지 사이를 끊임없이 연결한다. 영상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원거리 국가 간의 이동이다. 사실 이는 인간의 시야각이 포착할 수 없는 원테이크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인칭 시점으로 지속되는 여행은 멀찍이 분리되어 있던 장소를 통합하면서 관객을 이동하는 위치로 몰입시킨다.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이 새로운 여행지에서 느낀 감흥은 휘발된 채, 프로그램은 개별 이미지들을 이어 붙이고 또 다른 여정으로 뒤집어 놓는다. 시점은 고정되어 있고 위치는 이동하는, 절반만 옳은 명제처럼, 〈Mouthless〉는 포털을 다이나믹하게 이동한다. ‘Dynamic’은 ‘역동적’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로 해석되나 명사 ‘Dynamics’는 ‘역학’의 뜻을 지닌다. 역학은 개체 간 힘의 작용을 학문적으로 다룬다. 이지윤의 영상에서 예상 밖의 운동을 발생시키는 프로그램의 힘은 사용자의 입력어를 프로그램이 곧이 수용하지 않을 때 두드러진다. 작가는 다이나믹한 움직임과 이동을 만들어내면서 지속적으로 다른 포털로 이행시키는 프로그램,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동력을 채널 틈으로 유입시킨다.
 그렇게 〈Gress Set〉와 〈Mouthless〉, 두 공간은 일인칭 시점을 드러내는 방식을 따르지만 서로 다른 형태로 주체로부터 시점을 떨어뜨린다. 쇼룸에서 가벽은 고립된 영역을 확보해 시야각을 차단했다면, 두 번째 작은 방에서  〈Mouthless〉은 프로그램의 구동력으로 파편화된 장소들을 통합 시키면서 한 명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감상을 유도한다.

(Sur)Portal

 아마도 예술공간의 바깥 거리로 나가면 쇼룸의 윈도우가 가시권에 들어 온다. 거리에서 관객의 시점은 윈도우 내부로 유입되나 전체를 볼 수 없다. 여기서 〈Gress Set〉의 장면은 한 눈에 담긴다. 가벽이 가른 두 영역을 오가는 관객과 모니터로 설치된 영상들은 시야각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 전체를 조망하는 듯한 광경은 여전히 가벽과 유사한 장벽이 우리 앞에 존재한다는 맹점을 숨기고 있다. 건물 바깥 관객이 선 지점에는 여전히 시점이 포착할 수 없는 빈틈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의 몸으로는 같은 시간에 공간 내부에 존재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은 카메라에 포착되는 동시에 실시간 영상을 감상할 수 없었던 동선의 경험과 연결된다. 카메라와 텔레비전 모니터가 연결된 폐쇄적 구조로, 관객의 실시간적 반응이 투영되는 비디오 아트는 모니터를 보고 있는 시점과 신체를 비추는 카메라의 위치를 일치시키며 화면 안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실시간 반영되는 현장을 볼 수 없는 상황은 시점과 위치를 분할해, 모니터 바깥으로 관객의 시점을 쪼개어 둔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구조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한 권의 소설의 독자 상태와 흡사하다.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면 첫 페이지의 내용을 알고 있지만 다음 내용을 알 수 없듯이. 다음 서사는 오직 우발적이며 통제할 수 없는 사건, 갑작스러운 마주침, 일상에 균열을 가하는 힘에 의해 파생된다. 남겨진 챕터에 운동성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 바깥의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바깥에서 자생하고 있는 시점을 상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지윤이 여러 차례 언급했던 이인증 depersonalization을, 전시를 열고 또 보내주는 이 시점에 언급하고자 한다. 분리와 소외는 이인증의 주된 감각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이인증을 촉발하는 무수한 요인 중 하나는 ‘알 수 없는 인격과의 조우’이다. 마주침은 생경한 장소에서의 익숙한 사람과 사물, 나와 붙어 있었지만 떨어진 기계의 기능, 인간처럼 사고하는 복수의 존재 등 가까운 삶 저변에 깔린 무수한 요인 간에 이루어진다. 불충분한 동기가 추동한 만남으로 새로운 포털은 열린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¹ 조원철, 「목격증인의 범인식별(Eyewitness Identification)과 라인업(Lineup)」, 법조 58, no.1, 2009,  p.244
²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이런, 이게 바로 나야!』, 대니얼 C. 데닛(엮은이), 김동관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1, p.391
³ 영화 촬영에서 Point Of View(POV)라 부르는 1인칭 시점 샷은 작품 속 등장인물과 스크린 밖 관객의 시점을 일치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POV 샷은 일련의 시간 순서를 따르며 구성된다. 먼저 인물의 모습이 제시되며 어딘가를 바라 보고 있는 장면이 촬영된다. 다음으로 화면은 인물의 시선이 닿는 대상을 보여준다. 이는 선형적 타임라인에 따라 압축적으로 구성되며 등장인물과 관객의 눈을 밀착시킴으로써 몰입감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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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크레딧 Project Credit

공간 조성 및 설치 Space Construction and Coordination
함영훈 Ham Young Hoon
공간 도움 Exhibition Design Supported by
문나린 Moon Narin
핸드아웃 디자인 Handout Design
지민아 Jee Minah

1.  Gress Set, 2026, 3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2’ 루프

프로그래밍 Programming
김호남 Kim Honam
사운드 Sound
공하임 Gong Haim

1-1. Finite Gress
3D 그래픽 3D Graphic
박지원 Park Jiwon

1-2. 2nd Gress
촬영 Filming
서영진, 박선호 Seo Youngjin, Park Sunho
조명 Lighting
서영진 Seo Youngjin
출연 Performing
지민아 Jee Minah
그림 Painting
김다정 Kim Dajeong
현장 도움 Assistant
강다원, 김상은, 박제호 Kang Dawon, Kim Sangeun, Park Jeho

1-3. Next
3D 그래픽 3D Graphic
박지원 Park Jiwon

2. Mouthless, 202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8’ 37’’

사진 및 영상 제공 Photos and Videos Provided
2026
김미애, 김지원, 남미경, 박서우, 박지원, 이유민, 이지윤, 조영
Kim Miae, Kim Jiwon, Nam Mikyung, Park Seowoo, Park Jiwon, Lee Yumin, Lee Jiyoon, Jo Young
Kling 2.6 Veo 2.1 Veo 2.o Gen-4 turbo Firefly

2024
남미경, 문나린, 박미량, 박지원, 이보영, 이하루
Nam Mikyung, Moon Narin, Park Mirang, Park Jiwon, Lee Boyoung, Lee Haru
LUKA Gen-2 Gen-3 Firefly

사운드 Sound
공하임 Gong Haim
목소리 Voice
신윤희 Shin Yoonhee



《풍수풍수!: 미래 가치에 투자하라》




《풍수풍수!: 미래 가치에 투자하라》
기간| 2025년 11월 21일 - 12월 3일 13시 - 19시 (휴무 없음)
장소 | 공간파도(서울 마포구 고산로7길 23 1층)
기획 | 제삼기획 (강다원  X 이유민 ), 이예란



 좌청룡‧우백호, 맑은 물과 양지, 남향과 바람길. 과거 사람들은 풍수지리를 기준으로 좋은 터를 골랐다. 터를 읽는 기술은 단순한 미신이나 장식적 담론이 아니라, 생존과 삶의 안정을 가늠하는 실천적 지식이었다. 한편 한국에서는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이후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었고,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한 도로망과 교량의 건설은 도시화를 가속했다. 경제 성장과 함께 투기는 과열되었으며, 국가 주도의 강남 개발은 새로운 부촌을 탄생시켰다. 이어 1980-1990년대 1기 신도시 개발(1989~1996년)은 서울에 집중되었던 수요와 투기를 수도권 전역으로 확장시켰다. 이는 정책과 자본에 얽힌 도시 개발이 좋은 터와 집을 향한 개인의 욕망을 추동한 결과로 드러난다.  급속한 성장 속에서 집은 안식처를 넘어 계급의 지표이자 성공의 척도, 교환 가능한 가치가 되었다. 오늘날 ‘좋은 집’을 판정하는 기준은 상권, 학군, 접근성, 편의시설, 치안, 쾌적성 등으로 정교화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요소가 투입되기 이전의 공백 역시 ‘미래가치’라는 말로 포장되어 다시 투기의 대상이 된다. 이때 ‘좋음’의 기준은 더 이상 땅의 형세나 물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분양 브로슈어의 문장, 지도 서비스의 표기, 알고리즘의 추천, 단지 이름에 부여되는 수사와 이미지가 가치의 선행지표가 된다. 우리는 점차 터를 읽기보다 언어와 이름을 소비하며, 그 기호가 가격을 호출하는 현실을 살아가게 된다.
  《풍수풍수.ᐟ : 미래가치에 투자하라》는 2025년을 기준으로 50년 뒤인 2075년, 부동산 열풍의 잣대로 다시 소환된 ‘풍수지리’의 언어를 통해 서울의 미래를 상상한다. 거점은 공간 파도가 자리한 마포구 노고산동으로, 재개발과 신규 교통망 같은 현재의 정책적 상상력이 과거의 풍수 논리와 교차되는 장소로 설정된다. 전시는 [월드 퍼스트 센텀 센트럴 파크 시티뷰 프라임 리버 레이크 포레 에듀 스카이 레전드 아파트]라는 가상의 표준을 세운다. 장황한 아파트의 이름은 오늘날 주거 상품이 영문 조합과 상징어(월드, 퍼스트, 파크, 리버, 포레, 스카이 등)로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는 관행을 환기하며, 지명의 기억을 상품명으로 치환하는 현실을 비춘다.  전시는 좋은 집의 기준이 되어 온 과거-현재-미래를 한 자리로 중첩시킨다, 풍수지리에 따라 배치된 가구와 사물, 미래의 최신 기술과 교통 인접성을 암시하는 단서, 그리고 분양 홍보물에서 차용한 문구와 아이콘이 서로 겹쳐진다. 모든 오브제는 크로마키 그린(Chroma Key Green)으로 도색된다. 크로마키 그린은 실시간 합성 혹은 디지털 후편집 시에 사용되는 컬러로, 피사체와 배경을 분리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그 기능이 전복된다. 모든 것이 같은 녹색으로 칠해질 때, 대상과 배경의 경계는 흐려지고 쓰임은 지워진다. 스티로폼과 골판지로 제작된 모형 가구와 소품은 기능 없이 껍데기만 남은채, 알맞은 위치에 놓인 목업(mock-up)으로 작동한다. 관람자는 녹색 모형 사이를 지나며, 터의 운을 바꾸는 힘이 산줄기와 물길만이 아니라 우리가 붙이는 이름, 선택, 투자임을 확인한다. 기능을 비워낸 오브제들은 ‘좋은 집’의 신화를 지탱해 온 도시 재편의 힘을 껍데기만 남긴채 공허함을 드러낸다. 우리는 어느 풍수를 믿고 어떤 미래가치에 응답할 것인가?



《(non)Blind-Spot》



《(non)Blind-Spot》
기간| 2025년 9월 19일 (금) - 10월 2일 (화) 12시 - 19시 (휴무 없음)
* 오프닝 행사 | 9월 20일 (토) 오후 6시
장소 | PS Center (서울 중구 창경궁로5다길 18, 3층)
기획 | 제삼기획 (강다원  X 이유민 )
참여 작가 | 김민, 김소희, 노예주, 안진선, 머피염, 이예란
라운드테이블 패널 | 김강리, 노예주
전시 리뷰 | 손하늘
번역 검수 | 조진영
공간 조성 | 함영훈
운송 및 설치 | 아트 들이다
그래픽 디자인 | 박현지
촬영 | 남형석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2025년도 청년예술가도약지원사업 선정작입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1) 김소희 현장 퍼포먼스 〈반죽 서비스〉
: 9월 20일 (토) , 9월 28일 (일) 오후 5시 - 6시(총 2회)
2) 라운드 테이블 〈청년, 미술, 노동: 청년 미술가로서 노동을 바라보기〉
: 9월 27일 (토) 오후 4시 - 6시 (패널: 김강리, 노예주)


“젊은이들을 또 다른 사회적 부담으로 여기는 시각이 퍼지면서 이들은 더 이상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담론에 포함되지 않게 되었다. … 이들은 처분 가능한(disposable) 인구의 일부로 간주된다”¹

 청년이 사회 발전의 도구로 소모되는 현실에 관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야기로 전시를 시작한다. 이는 청년의 젊음이 숭배(cult)의 대상이 되면서도, 동시에 국가 발전을 위해 소모되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현실을 의미한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받은 교육을 노동으로 지불해야하는 의무를 지닌다. 동시에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은 IMF 이후로 희망이 사라진 도시를 살아가며 국가 발전에 무관심한 개인주의 집단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세대를 향한 파편적인 평가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고, 누구에 의해 정의되었는가? 다층적 청년의 양상을 균질화하는 기존의 세대론을 향한 의문은 동시대 청년의 담론에서 비가시화된 현상에 주목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청년들은 ‘88만원 세대’나  ‘N포세대’²처럼, 경제적 지표에 따라 시대의 위기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대표적인 청년 담론인 ‘88만원 세대’가 등장하던 시기의 청년층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는 ‘잉여’였는데, 이는 청년들이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음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호칭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 사회는 청년을 경제적·사회적 권력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재생산(social reproduction)의 관점으로만 바라본 것이다. 이러한 호명은 청년을 스스로의 다양성과 주체성을 지닌 존재로 보지 않고, 특정한 위기의 세대로 고착하는 현상을 유래했다. 이는 ‘386 세대’나 ‘X세대’처럼 사회 변혁적이고 투쟁적인 성격이나 찬란했던 90년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이름보다는 더 암울해진 시대를 반영한다. 한편, 동시대의 ‘MZ 세대’는 출생 코호트³로 정의된 M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출생)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출생)를 포괄하는 단어로 88만원 세대, N포세대와 동일한 청년세대를 지칭한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부터 Z세대를 과연 동일한 집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88만원 세대의 구조적 빈곤과 암울함은,  MZ에게 덧씌워진 소비 세대의 ‘철들지 않은’ 이미지와 모순된다. 이러한 호명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청년의 다양한 현실을 일반화한다.

 전시의 제목《(non)Blind-Spot》에서 ‘Blind Spot’은 사각지대를 의미하는 용어로, 오늘날의 주류 세대론에 가려진 청년의 자리를 비유한다. 전시에서 작가들은 모두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출생했고 동일한 사회적 기억을 공유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이행기 세대에게 요구되는 개인의 생애주기별 노동에 조금은 빗나간 삶을 영위하거나, 그러한 태도나 과업에 따른 슬픔을 작품에 충실히 녹여 왔다.
 사회정책 대상으로서의 청년은 경제적 시민으로서 노동시장에서 일을 해야 시민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청년으로 균질화⁴되어 왔다. 그러나 작가들은 국가 발전의 차원에서는 수용되지 않는 사회 활동과 가사 노동을 포함한 비가시적 노동, 쉽게 대체되는 비정규직 근무, 조명되지 않았던 병역 거부자 혹은 마사지사의 존재, 경제적 시민으로서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는 청년의 불안정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 세대 속 개인으로서, 오늘날의 미시적인 문제들을 톺아보는 작품으로 나타난다. 작품들은 사회적 재생산 노동과 거리가 있다. 전시는 거대한 사회의 한 켠에 존재하나 드러나지 않는 노동과 그것을 다루는 작가들을 통해 수단으로 소비되지 않는 청년 주체의 각각의 모습을 제안한다.  기존의 세대주의 시선은 불평등의 원인과 작동 방식을 은폐한 채 집단 간의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이익을 취해왔다. 그러나 청년은 공동의 운명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실제 세대를 구성할 수 있다는 만하임의 말⁵에서, 오늘날 청년의 위기에 대항하는 연대를 상상할 수 있다.


노예주는 회화 작가이자 활동가로, 자신이 참여하고 접해 온 투쟁 현장을 그린다. 작가는 동물권 운동에서 출발해 장애인 이동권 투쟁, 미등록 이주민 운동, 재개발과 강제 집행으로 인해 쫓겨나는 이들과 연대하는 도시 운동처럼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활동에 참여해 왔다. 이러한 운동에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회화 작가로서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 관한 고민과 연결된다. 작가는 극적인 순간만을 포착할 뿐 아니라, 신발 끈을 고쳐 묶는 동료, 농성장 천막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등 투쟁이 지속되는 일상적인 장소를 살펴 기억하고 회화로 그린다. 이 장면들은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포착하게 된 투쟁 내부의 모습이다. 노예주는 분주한 현장과 이를 표현하는 작가의 역할 사이의 거리감을 고민하고 그 현장을 회화로 재현하는 윤리와 방법에 관해 질문한다.
이번 전시의 〈텔레그램〉(2025) 연작은 현장 내부에서 빠져나와 바깥의 시선에서 접근하여 기존과 다른 방법론을 취한 회화다. 해당 작품은 작가가 이전과는 달리 시위 현장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메신저 ‘텔레그램’으로만 현장 분위기를 접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반영한다. 휴대폰으로 포착된 불완전하고 저화질의 이미지들은 아이폰13과 동일한 크기의 14.7 x 7.1 cm 캔버스 16점에 옮겨진다. 이어 〈스크린〉(2025)에서 휴대폰으로 촬영된 사진은 확대된 화면으로 재현되어 불분명하게 늘어진다. 또한, 이미지는 확대될 수 있지만 장소에 다가갈 수 없는 위치의 한계가 이렇게 불명확해진 화면에 반영된다. 총 18점의 그림은 모두 휴대폰 액정 표면에서 작가가 파악한 현장 이미지를 그린 것으로, 액정의 매끈함과 그 위로 반사되는 상은 레이어의 개입으로 구현된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에서는 휴대폰 액정과 연동되는 이미지의 평면성이 감지된다. 이를 통해 노예주는 ‘현장’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안으로 다가갈 수 없는 위치로 관객을 밀어낸다. 사건에 더 다가갈 수 없고,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은 투쟁이라는 노동의 한 형태를 통해 제안되면서 누군가의 슬픔과 절실함을 이미지로 접하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공명한다.

김소희는 장소와 환경이 사회 제도 속에서 어떻게 구조화되는지 탐구하며, 그 속에서 지워진 노동 주체와 신체를 드러낸다. 작가는 실제 장소에 자신의 몸을 개입시키는 행위를 통해 주변 환경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틀에 균열을 낸다.
〈파트타임 썬샤인〉(2020)은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을 드로잉으로 옮긴 작업이다. 아르바이트는 독일어 Arbeit(노동, 일하다)에서 유래했지만, 한국에서는 임시·시간제 노동을 지칭한다. ‘알바’, ‘알바생’은 쉽게 대체 가능한 임시 인력, 혹은 잠시 일하는 학생을 연상시키며, 이들의 노동은 법적 권리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비가시화된다. 작가는 카운터 안쪽에 배경처럼 존재하는 자신의 위치를 태양에 비유한다. 태양은 멀리 배경으로 여겨지지만, 종이를 태울 만큼 강력하다. 작가는 아르바이트 시간마다 태양 사진을 촬영하고, 이후 돋보기를 통해 그 사진을 태운다. 종이가 실제 태양열에 훼손된 드로잉은 은폐된 노동을 물리적 흔적으로 남기며, 청년 노동 주체를 드러낸다. 〈반죽 서비스〉(2025)는 도시 길거리의 마사지샵 광고 속 여성 노동의 이미지가 자신의 일상과 괴리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일은 돌봄을 수행하는 모성적 이미지, 혹은 성적 매력을 제공하는 사물적 이미지로 대상화된다. 퍼포먼스에서 나누어 먹을 음식을 만드는 행위와 신체를 마사지하는 행위는 뒤섞인다. 작가는 거대한 빵 반죽을 치대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몸짓을 드러내고, 관객은 퍼포머의 숨찬 호흡을 듣는다. 이는 노동의 소리이자 동시에 성적 뉘앙스를 함의하며, 여성 노동을 수동적이고 순응적으로 바라보는 관객 스스로의 시선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그들이 나를 볼 때 나도 그들을 봅니다〉(2025)는 마사지샵 광고 이미지를 직접 만지는 여정을 기록한다. 마사지 노동은 전문적이고 고된 서비스 노동이지만 낮은 사회적 위상과 성 산업과의 연관성, 여성 중심 직종이라는 인식 등으로 인해 대상화된다. 김소희는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마사지샵 내부에 들어가 건물 외벽에 붙은 광고 시트지를 손으로 만지고, 관객은 오로지 녹음된 소리를 통해 내부와 접촉하는 과정을 추측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광고 이미지를 멀리서 소비하는 익숙한 위치에서 벗어나 외부인과 노동자의 위치가 전환될 수 있음을 드러내며, 비가시화된 노동을 촉각적·청각적 경험으로 가시화한다.

머피염은 익숙한 공간에 자리한 기성품을 본래의 장소로부터 분리하고 규칙적인 기계의 리듬을 지닌 작품으로 새롭게 제작한다. 작가는 주위에서 사회적 의례나 관습에 의해 기능이 정해진 사물들을 발굴하고 수집한다. 어린아이의 인형, 낡은 벽지, 작은 액세사리처럼 ‘귀여운’, 때로는 ‘추억’을 상기하는 물건들을 작품의 재료로 삼아, 유년 시절의 기억에 있는 어렴풋한 노스탤지어를 끌어 올린다.  그리고 작가는 이 사물로 조형물을 제작하고 관객에게 공유 가능한 아련함으로 제시한다. 이때 머피염은 ‘허구적 노스탤지어(fake nostalgia)’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불확실한 추억에 도사린 연약함과 허구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조작된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애틋한 시간으로 만든다. 이는 서로 나눌 수 있는 기억을 형성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작가는 한없이 연약해지는 추억이 구성된 욕망일 수 있음을 주지한다.
머피염은 이번 전시에서 어딘가 세련되지 않은 벽지, 이미 사용해 뜯어진 박스, 영유아 돌봄 기구에 설치된 바운서(bouncer)를 활용해 〈Stuck〉(2025)을 제작한다. 전시장 벽면에 매달린 부드러운 꼬리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아이에게 안정을 주는 돌봄 기구는 꼬리라는 동물의 일부와 결합하여, 본래 사물에 깃든 목적을 잠시 망각하게 한다. 이는 돌봄 기구에 고착된 돌봄(노동)의 목적을 제거하고 기계적 회전이라는 특성으로 바꾸어 관객에게 최면과 각성 같은 효과를 전달하는 것이다. 고양이 꼬리와 박스라는 상반된 사물의 결합으로부터, 꼬리가 모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낯섦이 감지된다. 한편, 〈Time after Time〉(2025)은 현재 프랑스에 체류 중인 작가가 친동생에게 부탁해 제작한 영상과 함께 명품 쇼핑백을 진열한 작품이다. 이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오랜 기억 속의 사물을 대리로 만지는 동생의 손, 그리고 외피만이 중요한 자본주의의 산물인 명품 쇼핑백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허구적인 기억’와 연결된다. 영상 속에서 필통은 기능을 잃은 채 추억을 환기하며, 쇼핑백과 함께 현재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희미한 만족감을 주는 사물로 현실에 잔류한다.

안진선은 도시와 공간 속에서 감지되는 불안과 진동을 탐구하며, 신체가 공간과 맺는 관계를 설치 작업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바닥·벽·천장과 같은 물리적 요소가 우리의 안정감을 어떻게 흔드는지에 주목하며, 불안을 단순한 부정적 감각이 아닌 새로운 관찰과 경험의 계기로 전환한다. 이는 곧 도시가 지닌 불안정한 층위, 즉 흔들리는 구조물과 소음, 미세한 진동과 같은 현상들이 우리의 신체를 통해 체험되는 것으로 연결된다. 불안정한 구조물이나 진동, 긴장감은 관객의 몸을 매개로 다시 체험되며, 도시적 감각을 재구성하는 장치가 된다.
〈지관묶음〉(2023)은 지관과 화물차 고정 벨트를 사용해, 무거운 화물 트럭과 건축 현장과 같은 도시의 일상적 풍경에서 비롯된 소음과 진동을 형상화한다. 팽팽히 당겨졌지만, 완전히 고정되지 않은 구조는 불안한 긴장을 유발하며, 도시 속에서 쉽게 지나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몸을 통해 감각되는 불안을 시각화한다. 〈밀어내기〉(2025)는 관객이 직접 벽 조각을 밀어내는 행위를 통해 완성되는데, 손바닥에 전해지는 진동과 벽에 남은 흔적은 불안을 신체적으로 전환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흔적은 남지만 과정은 쉽게 사라지는 현대 노동의 구조를 은유하기도 하며, 동시에 내재한 불안을 해소하고 탐구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벽을 밀어내는 낯선 감각은 반복적이지만 기록되지 않는, 비가시화된 노동 경험을 불러내며 일상에서 체감하는 불안정성과 연결된다. 함께 설치된〈관찰을 위한 벤치〉(2025)는 벽을 미는 관객을 지켜보거나 이동한 흔적을 바라보는 자리이다. 이 위치는 행위를 하는 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간극을 드러내며, 노동이 수행되는 방식과 소비되는 방식을 은유한다. 이처럼 안진선의 작업은 도시에서 미세하게 진동하는 감각과 불안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면서, 그것을 해소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을 실험한다. 청년 세대가 겪는 불안정하고 보이지 않는 노동은 몸의 차원에서 환기하는 문제와 연결되지만 동시에 불안을 전환하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장기적인 탐구와 맞닿아 있다. 관객은 도시의 감각과 세대 경험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불안과 진동을 새롭게 사유하게 된다.

롤플레잉 게임(RPG)에서 NPC(Non-Player Character)는 게임 플레이어가 대리 물인 PC(Player Character)를 통해 수행하지 않는, 여과된 업무를 담당한다. NPC는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게임의 마스터가 설정한 반경 안에서 지시한 역할 만을 수행하고 플레이어의 게임을 돕는 보조적 캐릭터로 알려져 있다. 이예란은 게임 세계 안에서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되는 NPC를, 흰 천을 뒤집어쓴 형체로 표현한다. 그의 회화에서 NPC는 중단기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임시 인력으로 일했던 노동자로서 작가 본인을 상징한다. 비정규직 근로 형태 안에서 노동자는 그에게 부여받은 임시적인 시공간을 반복적으로 오가고, 고객에 의해 소비되며, 할당된 노동을 충실히 해내야만 한다. 노동자의 신체는 유니폼에 가려지며 사소한 행동과 판단조차도 고용 환경의 규칙에 따라 통제된다. 작가는 이렇듯 주체성이 소거된 상태를, 천을 뒤집어쓴 여러 NPC로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그들 각각이 겪는 모험, 그로부터 출몰하는 슬픔 등의 감정을 만화적 표현으로 담아낸다.
〈구인구직 NPC〉(2025) 시리즈에는 NPC가 자본주의의 심판대에 오른 캐릭터로 그려지며 급여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 회화에서는 NPC의 초상이 담긴 이력서를 보는 또 다른 NPC가 등장하는 등 하나의 이력서에서 파생된 양상이 비친다. 그러나 이들의 ‘다양성’은 NPC 캐릭터로 통일되며 소거되고 단일한 노동자의 모습만이 떠오른다. 이들의 노동하는 일상은〈NPC#_출근〉(2025)과 이들은〈NPC#_퇴근〉(2025)이라는 대칭의 회화에서도 드러난다.
한편, 〈구인구직 NPC〉와는 달리, 각각의 NPC가 논 플레이어(non-player)를 벗어나 삶의 주체가 된 서사도 함께 제시된다. 예컨대 〈혼란! 위기를 기회로〉(2025)에서는 오물 풍선이 등장하고, 〈새로운 세상이 올 거야〉(2025)에서는 절벽 끝에 선 NPC의 모습을 통해 절망 이후를 고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2024년 북한 대남 오물 풍선 살포 사건을 포함해, 불안했던 한국의 시국에서 출발한 회화이다. 다소 극적으로 표현된 밧줄을 잡아끄는 NPC의 모습, 들어 올려진 깃발은 원형적이고 관습적 상징으로 표현되며, 청년 세대가 다가올 미래를 소망하는 기호로 나타난다.

김민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활동가로, 사회·정치적 시위와 집회의 현장을 기록해 왔다. 2012년부터 그는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촬영하는 채증 행위에 주목하며, 이를 반대로 기록하는 역채증을 진행했다. 시민을 촬영하는 경찰을 다시 찍음으로써, 채증 자료가 공권력의 근거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폭력성과 이중성을 폭로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동시에 현장에서 개별 존재들이 주체로 서는 순간과 연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포착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의 신작 〈시멘트 컵케이크(Cement Cupcake)〉(2025)는 병역 거부자이자 대체복무 당사자인 작가가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경험한 장면과 기록을 묶은 작업이다. ‘시멘트 컵케이크’는 병역 거부자들의 투쟁 끝에 도입된 대체복무제가 겉으로는 제도적 성과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먹을 수 없는 케이크처럼 청년들에게 무의미한 노동을 부과한다는 현실을 은유한다.
작품에는 대체복무 기간 촬영한 생활관의 사진, 대체복무 일지, 병무청으로부터 받은 서류, 양심 심사 기록 등이 포함된다. 이 기록들은 제도가 강조하는 합리성 아래 감춰진 모순과, 신념을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내적 균열을 드러낸다. 김민은 자신의 경험을 단순한 개인적 서사를 넘어, 청년 세대가 제도와 마주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사회적 장면으로 확장한다. 대체복무라는 제도는 선택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격리와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강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과정에서 신념의 시간은 노동으로 환원되고, 그 노동은 기록되지 않은 채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가시화 노동이 된다. 김민의 사진과 기록은 이처럼 은폐된 현실을 가시화하며, 전시장은 개인의 발화가 집단적 문제로 확장되는 공간으로 전환된다.  



[1] 지그문트 바우만, 리카르도 마체오,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나현영 옮김, 현암사, 2016, p. 92
[2]  88만원 세대란 IMF 이후에 성인이 되어 경제적 혼란기를 겪은 1980년대생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과 저임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세대로 정의된다. 또한 N포세대란 ‘N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으로, 연애·결혼·출산 등 필수적인 삶의 영역부터 시작해 집 마련, 인간관계, 취업, 꿈, 희망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포기한 2~30대 청년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최샛별, 『문화사회학으로 바라본 한국의 세대 연대기』,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pp.67~69)
[3] 코호트는 연령과 역사적 시간을 연결한 개념으로, 코호트는 동일시기에 출생한 집단(출생코호트) 혹은 같은 시기에 결정적인 경험을 공유한 집단을 의미한다. (Alwin, D. F. & McCamon, R.J. (2003). Generations, Cohorts, and social change. In Handbook of the life course (p.25). Springer, Boston, MA)
[4]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청년연구자 되기(청년학개론)』, (사)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21, 중 변금선, 「’이행기 청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p.63 참고
[5] Mannheim, K. (1952). The Problem of Generations. in: Karl Mannheim. Essays on the Sociology of Knowledge (p.304). London: Routledge.




《흐릿한 장막에서 꾸는 꿈》




⟪흐릿한 장막에서 꾸는 꿈 A Dream on a Blurred Veil⟫
기간 | 2025. 09. 03. (수) - 09. 14 (일) 13:00 - 18:00 (매주 월, 화 휴관)
장소 | 예술공간 의식주(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80 2층)
기획 | 강다원
참여작가 | 김용선, 이선안, 정주하
포스터 디자인 | 박소호
주관 및 주최 | 예술공간 의식주
후원 | 서울문화재단 창작예술공간 지원사업,
스트로아트파트너십


영혼을 부르는 기계라 불렸던 수수께끼 같은 사물이 있었다. 17세기의 환등기(Laterna Magica)공연에서는 검은 장막이 덮인 극장 위에 해골 형태가 떠오르고 관객에게 다가가자 섬뜩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환등기 시연이 발전하면서 유령의 이미지가 연기 위에 투사되기도 했는데,¹ 사람들은 이 마법 같은 기계를 매직 랜턴(Magic Lantern)이라 불렀다. 이 기계는 현실에서 목격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소환하는 듯했다. 인간의 시각이 닿지 않는 세계의 존재를 조우시키는 영매처럼 말이다. 환등기 연극에서는 빛과 연기라는 산란(scattering)하는 성질을 지닌 두 물질을 조합해 환상을 극적으로 전달했다. 연기는 스크린² 이었고, 빛을 투사시켜 관객을 향해 이미지를 띄우는 매체였다. 그렇다면 회화는 어떠한가. 회화는 시네마와 달리 화가의 손에서 천천히 그려져 캔버스 위에 들러붙은 물감으로 환영의 이미지를 구성한다. 그것은 우리 일상에서 소멸하는 순간과 사념을 기록한다. 빛이 차단되면 프로젝터의 이미지는 그 옛날의 유령처럼 ‘꺼지지만’ 회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전시의 제목 ⟪흐릿한 장막에서 꾸는 꿈⟫에서 ‘장막’은 스크린으로, 회화에서 캔버스나 광목과 같은 지지체(support)를 은유하고 있다. ‘꿈’은 환영의 이미지에 빗댄, 현실에서 파생된 것이자 일순간 사라지는 위태로움을 내포한다. 동시에, 이 제목은 어떠한 환각이나 허구의 상을 창출했던 실존한 기계를 의미하고, 산란의 물질을 거쳐 현실의 기억에 유기되었거나 회상으로만 만날 수 있는 세계를 암시한다. 빛의 흐름, 산란과 굴절, 그것이 만드는 상(像)은 이곳에 한데 모인다. 전시의 참여 작가 김용선, 이선안, 정주하는 그들의 망막에 맺힌 상을 탐구하며 그 궤적을 평면에 남겨 왔다. 이들은 실제 본 장면에서부터 현실에서 파생하는 상(想)의 영역으로 지평을 넓혀 가며 천이라는 물질에 그것을 붙든다. 그렇게 그려진 회화는 빛의 파동과 이루어질 수 없는 풍경이라는 연약함을 만지고 볼 수 있는 사물이 된다.

  김용선은 바람과 빛처럼 잡을 수 없는 물질이 그리는 일시적인 형체를 표현 해왔다. 연속적으로 형태를 바꾸는 그림자를 특정 시점에서 포착해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작가는 그 일렁이는 현상을 중첩된 드로잉으로 표현하거나 만질 수 없는 상의 기운을 ‘더듬으며’ 생동적인 식물의 잎을 그리는 등, 지속적인 물질의 운동을 담지해왔다. 이번 전시의 작품 제목에서는 심상 혹은 특정 물질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너울’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어두운 물 표면 위 맺힌, 수많은 찰나의 빛을 캔버스 위에 옮긴다. 붓에 묻은 물감을 천 위로 이행시키는 과정에서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어떤 순간은 추상적인 형체로 남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일정한 움직임을 띠고 있지만 불규칙한 파동과 리듬으로 만들어진 기운처럼 다가온다.

  이선안의 회화에서는 빛이 대기를 만나 흐려지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광목천 표면에 남은 젯소의 흔적은 뿌옇게 보이는 풍경을 실재가 아닌 회화적 표현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작가는 김 서린 안경이나 안개 속을 통과한 장면을 포착한대로 그린다. 그렇게 그려진 회화에서는 발광하는 빛의 자욱으로 인해 꿈처럼 흐릿한 인상이 남는다. 한편, 사이드미러에 맺힌 차량 바깥의 풍경이나, 가까운 이가 등장하는 결혼식 영상의 일부를 그린 회화는 ‘가까이 있지만 볼 수 없는 것’을 다룬다. 그것은 눈이 감지할 수 없는 각도, 혹은 관찰자와 사물 사이의 실제 거리감이라는 시각 기능과 함께 사람 사이의 관계를 포함한다. 작가는 되려 친밀한 관계 내에 놓인 인물들을 영상, 즉 한 겹의 레이어를 통해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이를 통해 결혼식과 같은 의례적인 사랑의 언약 뒤편에 도사린 미래의 불안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정주하는 멈추어 있어 ‘죽은 것’으로 여겨지는 바위가 춤을 추는 환상을 그린다. 우리의 주변 곳곳에 있는 돌은 무언가를 받치는 용도로 사용되는 등, 일상에서 흔하고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정주하는 돌을 그가 구축한 세계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림은 대체로 모노톤의 단조로운 색채로 그려졌지만, 그 안에 펼쳐진 시공은 가벼운 돌들이 화면을 자유로이 부유할 수 있는 우주처럼 보인다. 우리가 군림할 수 없는 또 다른 곳에서 익숙한 생명체들이 그들만의 안전한 생태계를 일구듯. 한편, 여기에서 돌은 ‘응어리’로 비유되는 낯익은 표현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력을 거스르고 켜켜이 쌓인 돌을 해결될 수 없는 불안과 걱정으로 치환한다면, 작가가 일군 흑백의 세계는 욕망이 투영되어 있으면서도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세계로 바라볼 수 있다.

  견고하지 않아서 그릴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이루어진 그림들이 있다. 물감은 찰나라는 운명이나 사소한 꿈을 시연하기 위해 캔버스 위에 찍힌다. 이는 기억이나 상상에 머무른 형상을 가시화하려는 시도이기에, 곧 사라질 유령처럼 허망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곳의 회화는 망령같은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면서도 그것을 캔버스 천에 붙들어 둔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빛과 연기의 장막이 남긴 환영과 달리, 회화는 지워지지 않는 표면 위에 머문다. 그것은 한때의 순간을 증명하고 또 미래를 암시하는 징후이다.





¹ 올리버 그라우, 『미디어아트의 역사』, 주경란 옮김, 칼라박스, 2019, p.136
² 환등기 공연에서 연기를 스크린으로 바라 본 연구로, 고혜빈, ⌜포스트-매체' 시대의 매체로서 스크린⌟, 국내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23, p.34-35를 참고하였다. 초기 환등기 공연에서는 공연장 내부의 벽이나 희뿌연 연기를 향해 이미지를 영사하여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또한 18세기 대중적 환등기 공연인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에서는 천장에 반투명 천을 걸었고, 이미지 배경과 동시에 환등기를 가리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유리그릇(Over Vivarium)》




⟪유리그릇(Over Vivarium)⟫
기간 | 2025. 2. 13. (목) – 2. 23. (일),
월요일 휴관, 11:00 – 19:00
장소 | 노들섬 노들갤러리 2관(서울 용산구 양녕로 445)
기획 | 강다원, 이유민
참여작가 | 거니림, 박승희, 이미솔, 이한나, 한선희
그래픽 디자인 | 김민철
촬영| 남형석
설치 | 아트 들이다, 이예란
주최 및 주관 | 노들섬 운영팀
후원 | 서울문화재단



《유리그릇(Over Vivarium)》은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기존 관점의 틀을 넘어,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봅니다. 인간의 문명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빠르고 편안한 생활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개발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려온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바리움은 인간이 동식물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한 작은 생태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물질이 자연 환경에서 유리그릇 안으로 옮겨지는 순간, 관상의 대상으로 변화하며 자연은 축소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가 자연으로 받아들이는 익숙한 풍경을 포함해, 생태계 속 크고 작은 존재를 조명하고, 자연의 생물들은 인간의 삶에서 어떻게 밀려났는지 살펴봅니다.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종과 그들을 향한 인간의 태도를 되돌아보며, 우리가 놓치고 있던 자연의 가려진 부분들을 다시 보기를 제안합니다. 《유리그릇(Over Vivarium)》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해 고민해 보고, 인간 너머 존재들에게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거니림 Guny Lim
거니림은 인간 사회의 생각, 관습 등을 도자 조각으로 표현하여 인간 중심적인 사고의 한계를 감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이를 위해 작가는 비둘기를 퇴치하기 위해 설치되는 버드 스파이크와 같은 동물 혐오 도구의 크기를 키우거나 모양을 변형시키는 것을 통해 그 방향이 사람을 향하도록 합니다. 비인간 존재들과 인간의 관점이 역전됨으로써 관객은 그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에 직접 공감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도시의 가로수, 제주의 노루 등 혐오와 소외의 대상이 된 비인간 존재들을 조명하는 것을 통해 생태 공동체의 다종적 공존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박승희 Seunghee Park
박승희는 ‘젤리신’이라는 초월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상상합니다. 작가의 회화에서 ‘젤리신’은 작가가 창작한 ‘광물 세계’에 존재하며, 자연 세상과 인간을 연결하는 인물입니다. 광물은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고 형성된 물질들입니다. 지구 환경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작은 동식물과 광물의 목소리는 희미해져만 갔습니다. 그러나 박승희는 ‘젤리신’이 살아 숨쉬는 드넓은 ‘광물 세계’의 바람과 햇빛, 거센 물살을 힘있는 붓질로 그려내며 자연의 강렬한 힘을 표현합니다. 작가가 그려낸 세계는 지구의 산과 바다와 닮아 있고, 작품을 통해 인간이 그동안 잠시 잊고 있던 동식물의 생명력과 자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미솔 Misol Lee
이미솔은 일상 속 가까운 숲을 산책하며 풍경을 그립니다. 작가가 그려내는 숲의 모습에는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작은 캔버스 위에 겨울에서부터 봄까지 점차 푸르게 물들어가는 자연의 모습이 나뉘어 그려지고, 하나의 캔버스가 여러 칸으로 나뉘어 한 달동안 매일 한 칸씩 그려집니다. 그리기를 쉬었던 하루는 칸을 비워 둠으로써 관객은 그 칸에 들어갔을 법한 풍경의 모습을 연상하거나 추측하게 됩니다. 이미솔이 그려내며 기록한 매일의 풍경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의 미시적인 궤적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자연의 거대한 리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객은 캔버스 위 한 칸씩 나눠진 풍경들을 감상하며 변화하는 자연과 인간의 시간을 감각하게 됩니다.

이한나 Hanna Lee
이한나는 우리 주변의 풍경에서 눈길을 끌지 못하는 사소한 존재들을 포착해 이를 그림과 조각으로 표현합니다. 주로 작은 풀, 꽃, 벌레, 열매와 같이 약하고 희미한 존재들이 작품의 대상인데, 그들의 다양한 모습과 특징을 보여주며 자연 속 작은 생명체들이 지닌 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작은 생명체들은 작가의 작품 속에서 연결되고, 교차하며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무시되고 잊히기 쉬운 도시 속 작은 생명체의 공존과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관객들은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회 주변부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사회 속 나와 다른 다양한 존재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태도를 고민할 수 있게 합니다.

한선희 Sunhee Han
한선희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돌을 모은 다음, 연필로 그려냅니다. 작가는 날씨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남겨진 돌의 특성에 주목하면서 돌을 여러 각도에서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하나의 돌이 닳아 모양이 변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험난한 자연의 풍화를 견뎌내는 돌은 무언가가 빠르게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현대의 도시와는 정반대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우리가 모두 사라진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돌들을 찾고 오랫동안 공들여 그리면서 평범하고 보잘것 없어 보였던 사물을 특별한 대상으로 변화시킵니다.
《테세라(Tessera)》




⟪테세라(Tessera)⟫
기간 | 2024. 12. 6. (금) - 12. 13. (금), 휴관 없음, 13:00 - 19:00
기획 | 강다원, 강혜연, 김강리, 안수빈
장소 | 공간 파도(서울 마포구 고산 7길 23 1층)
참여작가 | 도정윤, 박지원, 송금희, 오승은, 이서원, 이세린, 이현지, 정우진, 황소영, 황정현
그래픽 디자인 | 김소이
촬영| 남형석
후원 |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엑스퍼트


리플렛 다운로드: https://freight.cargo.site/m/Q2268884271169362504209830129935/-1205.pdf

‘테세라(Tessera)’는 “모자이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색깔 있는 작은 돌, 대리석, 유리 혹은 다른 물질의 작은 조각들”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우리는 크게 사상과 사조부터 작게는 재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작업세계를 조망하는 틀이자 일종의 선입견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낱말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하나의 풍경으로 남는 인상이 아닌 개별 시각이미지의 편린을 실마리로 삼아, 작가의 고유한 시각언어를 탐구하고 이미지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도정윤
도정윤은 인공물과 자연물, 추상과 구상, 물질과 비물질 등의 이분법적 개념에 주목하여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탐구한다. 꽃병은 실제 공간 속에서 환조의 성격으로 독립적인 ‘입체’라는 3차원의 물리적 특성을 가짐과 동시에 정지된 입체로서 관객의 시점에서 시시각각 그려지는 ‘정물화 속의 소재’가 되어 2차원의 대상으로 보여진다.

박지원
박지원은 통제와 중립성의 개념을 중심으로 공간과 장소의 경계를 탐구하며, 이를 검정을 통해 시각화한다. 작가의 검정은 부재나 여백이 아닌 물질성을 지닌 도구로 작동하며, 공간의 가시성과 감각적 체험을 통제한다. 이번 작업에서는 특정 장소의 맥락을 제거하고, 검정을 통해 단편화된 공간성을 드러내며 통제의 중립적이고도 권력적인 성격을 시각적으로 탐구한다.

송금희
송금희는 풍경을 가리는 블라인드를 주된 소재로 삼아, 시각성에 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성에 관한 질문의 시작점이 되었던 연작을 선보인다. 빛의 잔상과 눈꺼풀의 핏줄처럼 눈을 감았을 때 흐릿하게 나타나는 명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눈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자극, 즉 빛에 집중하여 시각예술을 재고하고자 한다.

오승은
오승은은 편물과 단추의 형태를 주된 모티프로 삼아 일상과 기분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뚝이처럼 좌우로 가볍게 흔들리지만 넘어지지 않은 형태를 만들고자 시도한 신작을 선보인다. 작품과 감상자가 맞닿으며 발생하는 동세(movement)를 통해, 거듭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몸들에서 발생한 감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서원
이서원은 보고 싶지 않은 작품을 포장재로 감싸두었다가 나중에는 단순히 하얀 것으로만 여기게 되었던 경험에서 출발하여 인식론적 실험을 전개한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지점에서 작가는 ‘어떤’ 사물을 ‘그’ 사물로서 대우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지를 묻고, 하나의 작품이 다양한 배치 속에서 달리 인식되는 현상을 살펴본다.

이세린
이세린은 유생에서 가졌던 형태나 완전히 다른 성체로 변화하는 자연 생물의 ‘변태’를 작업의 주요한 소재로 삼는다. 생존을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습성은  나비가 ‘DNA’를 낳는 사례로 이어진다. 작가가 타일 제작 기법으로 만든 ‘돌’들은 나비의 각기 다른 DNA-알로 치환된다. 겉보기에는 생명력 없는 돌멩이가 실은 각기 다른 유전자를 보유한 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이세린의 작품들은 잠재적인 역동성과 성장이 숨겨져 있는 미지의 물체로 기능한다.

이현지
이현지는 자연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생명의 본질을 조형적으로 탐구하며 독창적 언어로 재구성한다. 비정형적이고 유기적인 형상들의 중첩과 변주는 자연을 하나의 고정된 풍경이 아닌, 상호작용하는 생명체 간의 에너지 교환과 생태적 질서로 전유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생명력의 본질을 직관적이면서도 세밀하게 드러낸다.

정우진
정우진은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본인 그리고 주변 삶을 도자 작업으로 구축한다. 작가는 계속해서 회전해야 하는 충동과 위태로운 현실에 주목하여, 여러 개의 팽이들을 제작하거나, 몰드를 제작하여 동일한 형태를 만드는 방식을 채택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정우진은 직장과 집을 오가는 본인의 최근 일상을 되돌아보고 존재가 스스로 유지하려는 관성을 의미하는 개념 ‘conatus’를 빌려, 육각형의 도예 작품들을 선보인다. 비슷한 모양의 형태를 빚어 가는 반복의 행위는 획일적 하루의 틈에 끼워져 있다.

황소영
황소영은 자연을 단순한 재현의 대상이 아닌, 내재된 질서와 생명력을 조형적으로 재구성하는 대상으로 다룬다. 반복을 배제한 색채의 사용은 자연의 고유성과 비가역성을 드러내며, 전통적 윤곽선 대신 비움과 여백을 통해 색의 순수성과 감각적 깊이를 강조한다. 특히, 식가도(植架圖) 연작은 자연을 책가도 형식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자연의 미학적인 면을 일상과 맞닿은 감상으로 전환하며,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황정현
황정현은 ‘생각’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구축하여 머릿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을 회화로 소환한다. 본인의 내면과 세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각의 최초의 실마리를 발견하며, 이에 입체적인 성격의 등장인물들이 탄생하고, 회화 안에서 그들은 스스로 상황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황정현은 화면 속 인물들을 읽어내는 독자이자, 이미지를 연출하는 감독이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자로서 그들을 뒤쫒는 방식으로 저마다의 사연을 그린다.



《Honestly: Sticky Notes》




《Honestly: Sticky Notes》
기간 | 2024.11.15 – 11.30, 13:00 – 19:00
(매주 월요일 휴무, 11.30은 18:00에 종료)

장소| 안팎 스페이스 Annpaak Space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로 96-1)
기획 | 강다원
참여작가 | 김지원, 이주연, 차미정, 황유윤
그래픽 디자인 | 황정아
촬영| 남형석
설치 | 청기와
후원 |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엑스퍼트

Honestly: Sticky Notes
Place | Annpaak Space(2F, 96-1, Bugahyeon-ro, Seodaemun-gu, Seoul, Republic of Korea)
Date and Hour | 2024.11.15 – 11.30, 13:00 – 19:00(Monday off)
Curator | Dawon Kang
Artist | Lee Jooyeon, Kim Jiwon, Hwang Yuyun, Cha Mee Jeong
Designer | Jung-Ah Hwang
Photographer | Nam Hyoungseok


사라질 기억을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 우리는 메모지에 기록을 남겨 시선이 머물 자리에 붙여 둔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노란 종이들은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제 역할이 끝나면 버려진다. 간단한 글로 적힌 오늘의 생각은 그렇게 내일을 위해 남아 있지만, 금세 떨어질 듯 일상의 사물 위에 위태롭게 붙어 있다.
 《Honestly: Sticky Notes》는 “솔직히···”라는 부사가 빈 자리를 맴돌고 있는 어느 대화에서부터 출발했다. 대화를 막 시작할 때, 입에 달라 붙은 이 말은 친밀감에 힘을 실어 주며 상대방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듯 보이지만, 입버릇임을 깨닫는 순간 힘을 잃는다. “솔직히···”는 언제, 어떠한 말 앞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상황에서 이 말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말과 말 너머로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일상의 발화 속에서 우리 사회에 순환하고 있는 곧은 마음을 꺼내려는 열망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전시는 솔직한 표현과 감정을 탈부착 가능한 메모지에 빗대어, 네 명의 참여 작가들이 머금고 있는 서로 다른 솔직함의 정도를 가늠한다. 흰 벽의 전시 공간은 메모로 뒤덮일 백지다. 순수, 진실, 거짓 없음 등 어떤 단어로도 대치하기 어려운 ‘솔직함’의 태도는 낱개의 메모지에 비유된다. 네 명의 작가에서 출발한 작품들은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세계에 취약한 창작자에 의해 달라지거나, 몇 번의 여과를 거쳐 추상적인 형태로 변화하기도 한다. 솔직함의 과잉과 소진으로, 즉 이주연에서 김지원으로, 황유윤에서 차미정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낙하하는 메모지처럼 감정의 정도는 옅어 진다.
 《Honestly:Sticky Notes》는 서로의 진심을 원하고, 익명을 내세워 마음을 뒤집어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진솔하지 못한 태도를 마주하는 우리의 시대와 가까이 있다. 그러한 삶 가운데, 이 곳에서는 말의 허공을 떠도는 표현과 고백을 잡아내 작업 곁에 잠시 붙여보기를 시도한다.

이주연 Lee Juyeon
이주연은 사랑의 행위, 감정, 태도의 양가성을 드러낸다. 누군가를 향한 애정은 질투와 소외라는 내면의 갈등을 야기한다. 이주연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거쳐 본인을 마주한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과 조우하는 행위는 머뭇거림과 부끄러움을 동반하지만, 관객이 몸으로 느끼고 개입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면서 혼자만의 고민을 외부로 전달하는 가벼운 소회를 제안한다.

김지원 Kim Jiwon
김지원은 집을 갈망하고 있으나, 충족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낙담을 표현한다. 작가는 집을 얻지 못하는 슬픔을 유희적으로 드러내 왔다. 최근에는 집의 부재에서 기인한 억울함, 분노, 무력감과 함께 오늘날 일상에서 마주하는 주거 단지의 유사성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정하게 구획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똑같은 공간 속, 비슷한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보편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공간에 맞추어 살아가는 현대의 삶을 향한 작가의 관심과 연결되어 작품에 녹아 든다.

차미정 Cha Mee Jeong
차미정은 소리와 기억을 다룬다. 소리의 파동은 몸으로 느낄 수 있고, 그래프로 표현되었을 때는 시각적으로도 감지할 수 있다. 파동의 곡선은 특정한 패턴으로 나타나고, 기억을 저장하는 매체들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순간을 보존한다. 그러나 차미정은 사적인 경험을 포함한 각종 소리와 기억을 그만의 도자 조형물에 저장한다. 얽힌 필름과 테이프처럼 보이는 작가의 작품은 관람자의 시선이 닿는 순간 소리와 기억의 재현을 넘어, 어떠한 기억이든 담을 수 있는 물질이 될 수 있다.

황유윤 Hwang Yuyun
황유윤이 수집한 골동품들은 작가의 일상과 작업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수집에 대한 열망으로 모은 소품들이 그림의 대상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황유윤이 오랜 시간 모아온 물품들은 캔버스 안에 배치된다.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물건들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또다른 사물로 분리된다. 대형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는 대상들이 빠른 붓질로 배경과 뒤섞이고, 소중한 물품들은 관찰 요소, 혹은 그림의 소재라는 건조한 시선의 대상으로 변화한다.



《말하지 않는 섬》




《말하지 않는 섬》
기간 2024년 7월 24일 - 8월 4일 13:30 - 18:30
(월,화 휴무)
오프닝 행사 | 2024년 7월 27일 (토) 17:00 - 20:00
장소 | 서울시 서대문구 홍연길 80 2층 예술공간 의식주
기획 | 강다원
참여 작가 | 이지윤, 임아진, 전혜수
자문/사진 | 박소호
그래픽 디자인 | 황정아
설치 도움 | 이예란, 이유민
번역 | 임아진
주최 및 주관 | 예술공간 의식주
후원 | 서울문화재단 창작예술공간 지원사업



말하지 않는 섬에 대한 말

《말하지 않는 섬》은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가 공동체에 전해지는 과정에 주목합니다. 먼저 ‘무언도’라는 섬에 관한 짧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인간이 살아온 어떠한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언도는 미래에도 아무 말 없을 듯한 이 섬에 적합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가까운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쉽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서해안의 물이 빠지는 시간대에만 자갈과 석화로 뒤덮인 길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위태로운 지역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일 듯합니다.
《말하지 않는 섬》은 무언도에 사람들이 잠시 머물렀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인물들이 섬 바깥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상황, 둥그런 섬의 지형을 따라 걷는 모습,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들은 이러한 가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인 상황만으로도 비교적 수월하게 연결되는 서사는 또 다른 줄거리를 만들어냅니다. 마치 생명체가 폐쇄성을 유지하면서 외부로부터 유입된 에너지로부터 자율적으로 생존하듯 작은 단서들로 조합된 이야기는 원형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가설을 능동적으로 만듭니다.
 이 곳에서는 서사가 이동하며 또다른 이야기가 발생한다는 가능성을 제안하려 합니다. 이지윤, 임아진, 전혜수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무언도에 대해 꾸며진 이야기를 받았습니다. 이들로 인해 이동하는 말은 초기의 서사와 연결되어 있지만 차츰 분리됩니다.
 이지윤은 전달받은 이야기의 일부를 확장합니다. 작가는 무언도 설화에 등장하는 ‘동지 굿’이 등장하게 된 가설에 주목합니다. 귀신을 부르는 기이한 의식이 묘사된 글을 읽으며 작가는 무언도에 잠시 오간 인간들의 존재에 대해 질문합니다. 이러한 의문은 제의의 주체인 인간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상상으로 이어지며 설화에 전부 등장하지 않는 의식 활동의 동기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여러 도서 지역을 여행하는 지인들로부터 받은 짧은 영상들을 수집해 하나의 통합된 영상으로 제작합니다. 단편들이 하나의 이야기 세계를 구성하는 것처럼 이지윤의 영상은 여러 가설이 모여 탄생한 이야기가 자생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설화의 자동적인 힘은 임아진이 무언도를 연인의 강한 애착을 느낄 수 있는 고립된 장소로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무언도는 소나무와 암석으로만 이루어진 삭막한 환경으로 사람들이 오랜 기간 살기 어려운 곳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무언도 설화에서 확인한 정보를 바탕으로 현실 세계의 연인이 고립된 섬에 들어오는 과정과 애착을 느끼게 되는 또다른 서사를 만듭니다. 황량한 색과 거친 흔적으로 표현된 회화는 무언도의 삭막한 환경을 보여주지만 생존하기 어려운 장소가 누군가에게 도피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혜수는 무언도 설화에 등장하는 식생의 조건을 살펴보고 현실과 이상 세계의 경계에 있는 듯한 무언도의 특성에 주목합니다. 작가는 설화를 음성 파일로 변환해 반복적으로 들으며 꿈 속에서 무언도에 들어 가는 설정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합니다. 꿈에서는 섬의 물질들이 희미하게 보였다면, 작가는 이것들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전혜수는 마치 방문할 수 없는 섬에 직접 들어가 장소를 확인하고 또렷한 현실의 세계에 물질을 배치하는 수집가가 됩니다. 전시 공간의 그림들, 조형물과 작가가 조제한 향은 설화로만 추측할 수 있었던 무언도 사물들이 구체화된 산물입니다.
《말하지 않는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을 텅 비어 있는 죽은 곳으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각각의 가설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 위에 세워진 이야기와 인간 사이 피드백이 멈추게 될 지점을 상상합니다. 그 끝에서 돌아 보았을 때 원래의 이야기에서 뻗어 나간 서사가 얼마나 멀어져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어딘가에 이 섬이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언제든지 채워질 이야기들로 섬의 미래를 점차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