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2 - 12.07
예술공간 의식주,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80 2층
작가: 차현욱
기획: 박소호
포스터 디자인: 박소호
주관 및 주최: 예술공간 의식주
후원: 서울문화재단 창작예술공간 지원사업, 스트로아트파트너십
차오르는 달
동양 회화에서는 원형의 달을 공백으로 남기고, 달 주위에 옅게 먹을 칠해 달과 하늘을 표현했다. 이때 먹은 옅은 농도로 종이에 스며 들어, 축축한 구름을 비집고 달이 떠오른 듯 그려졌다. 떠오르는 달을 드러나게 했다.¹ 검게 보이는 하늘은 서서히 종이의 표면에 가라 앉고 무거운 위성은 공중에 신비롭게 걸린다. 흑으로 칠하지 않은 밤의 하늘은 언제나 열려 있다.
신비로움. 신기하면서도 묘한,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 오감의 파악 능력 바깥의 현상, 어렴풋한 기억, 그것을 모두 포괄하는 우주라는 시공간은 신비롭다. 수묵에서부터 안채, 호분이라는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를 사용하며 차현욱은 오늘날의 풍경을 그려왔다. 차현욱에게 ‘지금’은 고도로 발달된 망원경으로 관측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우주이자, 머릿속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기억까지 포함하는 그림으로 표현된다.
그 시작은 밤이었다. 빛이 사라진 어느 시간, 인간의 눈으로 포착할 수 없기에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간 낮의 기억들은 그 밤에 소환된다. 작가는 선명한 햇살 아래 보였던 낮 이후, 어둠의 시간이 가둔 장면들을 재구성해 화면 위에 옮겼다. 선명하게 보였던 일상이 사라진 대신, 하늘에는 수많은 발광체가 떠다니고 그 물체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공백이 남아 있다.
허무의 동굴
전시의 제목인 ‘뜬구름’ 그리고 차현욱이 그려온 밤과 기억, 혹은 상상으로 완결되는 풍경은 우주의 구름인 ‘성운’을 떠올리게 한다. 잡을 수 없어 실체가 없는 것. 그러므로 뜬구름은 허상과 같은 상태로 불려 왔다. 그러나 노자 사상에서 허무(虛無)는 부정적인 것이 아닌 우주의 근본인 도(道) 즉, 무에서 출발하는 미래와 유(有)의 여집합을 의미한다. 우주 역시 완전한 무라고 부를 수는 없는데, 별과 별 사이 여백에는 성운이라고 불리는 가스 덩어리와 티끌, 혹은 성간 물질과 수소로 이루어진 집합체가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운은 밀도와 온도에 의해 암흑부터 붉고 푸른빛의 스펙트럼을 띈다.² 만질 수 없는 공기의 응결로 형성되는 구름처럼, 우주의 성운 역시 구름과 흡사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마치 차현욱이 그린 회화에서 어지럽게 얽힌 물결들이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얽힌 형태처럼 말이다.
일전의 수묵 작업에서 작가는 여백을 남기는 동양화의 기법을 빌려, 그의 회화에서 표현된 요소들을 드러내려는 방법으로 얇은 여백의 선을 남겨두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선의 여백이, 애초에 채색을 시작하기 전 한지에 자국을 내어 그림의 길을 만드는 과정으로부터 파생한다. 이 자국은 대상과 대상 사이를 구별하며, 서로 연결된 통로로 기능한다. 그림 한 켠의 동물이나 인간처럼 우리가 ‘무엇’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형체들도 있지만, 그가 낸 자국의 길은 구름의 경로처럼 흐른다. 채색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러한 경로는 채색을 거쳐 기억의 산수화에 도착한다.
해방의 구름
원근법에 따른 서구의 풍경화와 달리, 동양의 산수화는 여러 장소에서 관찰자가 바라본 풍경을 종합적(다시점)으로 담는다.³ 이러한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차현욱의 그림은 특정 장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진경(眞景)보다는 낮의 기억을 복기하여 재구성한 의경(意景)에 가깝다. 작가의 회화는 낮에는 보이지만 밤에는 그 자취를 감춘 풍경, 그리고 어둠이 숨긴 비밀스러운 지평을 열어주는 문으로 작동한다.
차현욱은 그러한 문을 그림 속 인물과 회화의 구성으로 은유한다. 인물은 기억의 세계를 열어 연결할 수 있는 주인으로 그림 일부에 녹아 있다. 화면에서는 인물이 거대한 뭉게구름처럼 펼쳐진 세상의 작은 일부처럼 보이지만, 미지의 저편과 감지할 수 있는 이곳을 이어 주는 존재가 된다. 한편, 작가는 대형 캔버스에 그린 풍경을 연상시키는 부분들을〈땅의 조각〉, 〈하늘의 조각〉, 〈사이 조각〉에 퍼뜨려 그리기도 한다. 이들은 전시장이라는 환경에 한 데 놓인다. 작게 그려진 회화들은 하나의 그림을 맴도는 위성처럼 전시라는 궤도 안에 엮인다.
중력에 의해 지구라는 땅에 발이 묶인 사람들, 우리로 돌아간다. 차현욱의 그림에서 종이에 스며들거나 혹은 그 위로 거칠게 남은 갈필은 가볍게 떠 오른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신비한 너울의 틈에 작은 인간이 숨겨져 있다. 지나간 기억과 현재의 하늘, 미래의 무지로 구분되는 시간의 축은 하나의 그림에서 뒤섞인다. 별은 마지막 순간 초신성 폭발로 잔해를 방출하고 성운의 형태로 관찰된다. 아름다운 장면으로 펼쳐지는 무한한 죽음과 상상할 수 없는 세계, 차현욱은 낯익은 기억의 조합으로 흰 여백 위에 생경한 이미지를 조경하고 있다.
¹ 해당 표현은 김두량, 〈월화산수도〉, 1744, 종이에 수묵 담채, 82 x 49.2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참고하였다.
²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우주지식정보, https://astro.kasi.re.kr/learning/pageView/5199 (2025. 10. 29 접속)
³ 김인숙, 「산수화의 ‘의경(意境)’에 관한 연구」, 『동아인문학』 제38권, 동아인문학회, 2017, p.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