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경 평론



 
가감없는 세계, 매끈하고 거친 표면들:
최수경 작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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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경은 현실을 ‘가감없이’ 그린다. ‘가감’은 ‘더하거나 빼는 일, 그렇게 하여 알맞게 맞추는 일’[1]을 뜻한다. 가감없이 그려진 최수경의 회화는 우리가 눈으로 바라본 현실의 풍경을 인위적으로 배제하지도, 추가하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장면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최수경의 회화는 사진과 나란히 배치되기도 한다. 사진은 실존적으로 결코 더 이상 재생될 수 없는 것을 기계적으로 재생하고, 사진 안에서 사건은 다른 것을 향해 결코 스스로를 넘어서지 못한다[2]는 바르트의 유명한 말을 소환해본다. 이 말은 찰나를 포착하고 저장하는 사진의 기능과 작가가 작업을 출발하게 된 이유와 맞닿아 있다.
 현실을 지시하는 사진-Index는 인간이 그려낼 수 없는 현실의 풍경들을 충실하게 붙잡았고, 인간의 기억 처리에 의해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소거해 온 풍경들까지 낱낱이 담았다. 사진의 등장이 회화의 존립을 흔들었던 19세기의 역사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회화는 사진과 독립된 영역으로 뻗어 나가려 했다. 그러나 하이퍼 리얼리즘 Hyper-Realism 회화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그러한 그림들이 사진으로부터 추동된 증명의 강박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지, 극한의 사실같음이 어떻게 ‘다르게 보기’를 제안하는지, 우리의 시력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구멍들까지 붓으로 묘사한 회화가, 전시 공간에 배치되었을 때 어떠한 힘을 발휘하는지 끝없이 서술해야 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포토-리얼리즘 Photo-Realism[3] 회화를 그리는 최수경의 작업 세계를 사진이라는 기술이나 도구와 조우하게 만들어, 비교로부터 잠시 떨어지고자 한다. 작가가 흰 캔버스에서 천천히 쌓아 올리며 만들어간 시공간의 레이어, 그 레이어가 확장시키는 포착된 순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 작가가 2024년 하반기부터 제작하는 《진집》 시리즈를 살펴 보면서, 대상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보는 시도들을 톺아 보고자 한다.


물에서 창틀, 액정이라는 레이어
 최수경은 개인전 《깊게 눌러쓴 소리》(2023, 예술공간 의식주, 서울)에서 그가 2021년부터 그려 온 회화를 공개했다. 〈늪〉(2021), 〈나의 늪〉(2021), 〈푸르던〉(2021)은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주해 온 경기도 용인시 인근의 탄천을 거닐으며 마주한 순간을 그려낸 것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먼저 작가가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다음, 최대한 ‘정직하게’ 그려낸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수변을 그린 연작들이 흐르는 물결에 따라 이동하는 일시적인 상像을 포착할 수 있는 카메라의 역할을 수행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초기작들에는 이후 최수경의 그림에서 주요한 ‘레이어’의 단초가 숨어 있다.
 일렁이는 물결 위에 비친 주변의 건물, 하늘의 구름들, 그 사이에 카메라를 들고 있을 최수경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를 포함해 강물에 반사된 상들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강물은 가장 아랫부분에 깔린 흙을 조금 드러내면서도, 공중의 풍경을 반사시키는 막 layer가 된다. 작가의 수변 연작에서의 물은 카메라를 들고있는 촬영자(최수경)가 포착한 대상에서부터, 렌즈가 수용할 수 없는 범위까지 투영한다. 그러므로 수변의 물은 최수경 주변의 시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수변 연작은 2020-2023년 동안 진행되었다. 작가와의 인터뷰 중, 최수경은 한 시리즈를 진행할 때 따로 개수나 시간의 제약을 걸어 두지는 않지만 작가가 느끼기에 ‘어느 정도’ 기점에 이르면 그만 둔다는 말을 했다. 그 ‘어느 정도’라는 기점은 한 시리즈 뿐 아니라 개별 작품들을 제작하는 데도 적용되는 주관적 임계였다. 최수경은 그림을 그릴 때 사진을 보고 그리기 때문에, 사진이 그림의 종착지를 정해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말한 ‘어느 시점’은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수경의 작업 과정을 보면서 느껴지는 (현실을) 어디까지 그려낼 수 있을까?, 혹은 (현실의) 얼마나 그리고 있을까?, 라는 의문들은 철저히 작가에 의해 통제된 결과물일 수 있다.
 다시 수변 연작의 물에 이어서, 레이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작가는 수변 이후로도 장지에 채색을 옅게 여러 번 쌓아 올리는 한국화의 표현 방식으로 아파트 단지의 장미, 고가도로 아래, 눈이 소복히 쌓인 풍경들을 그렸다. 이 시기(2023-2024년) 제작된 〈실버 라이닝〉(2023), 〈Orange Sunset〉(2024)에서는 창틀이 등장한다. 창이라는 사물을 전면에 드러낼 수 있는 방충망의 짜임을 화면에 일일이 묘사하기도 한다.
창틀을 그림으로써 작가가 서 있는 위치는 보다 더 명확하게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창문이 등장하는 그림들에서는 건물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 묘사되었는데, 투시로 인해 작가가 내려다보는 시점이 전면에 드러난다. 이러한 창틀은 기존 작품들에서 묘사된 장면과는 달리, 작가 앞과 풍경 사이 한 레이어가 가로 막고 있음을 가시화한다.
 그렇다면 수변에서의 물과 창문에서의 유리는 어떻게 상응하는가? 최수경은 창을 그린 시점부터 ‘빛’을 적극적으로 묘사했다. 〈Orange Sunset〉(2024)에서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저물어가는 햇빛이 전면에 발산된다. 그리고 이 빛으로 인해 일상에서는 감지하기 어려웠던 유리창에 맺힌 물때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수경이 실제 서 있던 건물에서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면 강력한 빛으로 제대로 눈을 뜰 수조차 없었겠지만, 회화에 구현된 어느 저녁 하루의 노을은 사소한 물때까지도 비추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독특한 두 번째 빛은 바로 실내 형광등이 창문에 흐릿하게 반사된 현상이 표현되었다는 점에 있다. 같은 작품의 우측 상단을 살펴 보면, 주홍색의 햇빛과는 대조적으로 네모난 흰색 형상이 맺혀 있는데, 이는 실내에서 바깥을 바라본 그 순간 최수경 등 뒤에서 발산되던 인공 조명의 빛에 해당한다.
 작가는 대부분의 작품을 용인시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생산해냈다. 마찬가지로 그가 종종 산책하는 탄천, 아파트 단지를 포함해, 실내에서 보는 풍경들까지 그의 모든 바운더리 boundary는 캔버스에 충실히 옮겨진다.
 같은 해에 그려진 〈Yelllow Sunset〉(2024)에서, 작가의 신체 주변을 담는 레이어는 한층 더 중첩된 시공을 투영하고 있다. 해당 작품에는 기존 회화들과 마찬가지로 창 틀, 저무는 햇빛, 물 때, 방충망, 유리창에 비친 형광등 불빛이 묘사되어 있다. 초점은 창틀에 맺혀 있고, 바깥 건물들은 비교적으로 아웃포커싱 outfocusing 되었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점은 여전히 잘 드러나 있지만, 건물의 흐린 묘사 때문인지 창문은 더욱 두꺼운 장막처럼 느껴진다.
 이 그림에는 총 두 개의 시간대가 중첩되어 드러나 있다. 작가가 사진을 촬영했을 때의 순간,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의 상황이다. 작가는 셔터를 누를 때의 빠른 움직임과는 달리, 짧게는 며칠, 길게는 수 개월에 걸쳐 장면을 켜켜이 쌓아 나가는데, 종국에는 사진을 보면서 그릴 때 사용하는 디바이스 액정의 픽셀, 줄무늬까지 그리기 시작한다. 이로써 물-유리창-스크린이라는 레이어를 경유하며 작가가 속한 물리적 환경과 시간을 천천히 누적시키는 도구로 기능한다.
 그간 최수경은 “찰나의 순간에 대한 갈망”을 “장지에 눌러 담는”[4] 방식으로 재현해왔다. 유리창과 액정이라는 단단한 사물은 작가가 장지라는 여린 속성의 재료와는 다소 상반된 사물이지만, 경계를 가르는 투명한 물체들이 시공간을 투영하고 저장시키는 역할이 되었을 때, 순간을 눌러 담는 장지와 레이어는 공명한다.


불안한 자리에서
 불안한 상태라는 감각은 어디에서 올까? 불안정은 상태인가, 개인의 느낌인가? 앞서 최수경의 작업을 분석하는데 사용한 레이어는 사물(유리창, 액정)로 남아 있었다. 저물어가는 저녁의 풍경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최수경의 형상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어렴풋이 보이기는 했지만, 작가는 아직 그만의 조밀한 기법으로 인간을 묘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작가가 진행하고 있는 《진집》 시리즈에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주로 작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에 해당한다. 그러나 회화는 어딘가 불안하다. 정방형의 화면 안에는 중년 남성이 극히 확대되어 묘사되었다. 해당 시리즈가 불안한 감각을 환기하는 원인은 어색한 위치에서 편집되어버린 구도, 인물의 시선, 작가가 주목한 위치에 있다.
사실 수변과 작업실 (내)외부를 그린 지난 작업들에서도 특정 부분이 크게 확대된 듯한 장면은 있었다. 예컨대 장미 이파리를 확대하여 물방울의 반짝임이 돋보이는 〈초록밤〉(2024), 아웃포커싱으로 일부는 흐릿하게 뭉개진 〈나의 로즈마리〉(2024)가 그러하다. 이러한 자연의 장면은 아무리 확대하고, 가장자리를 잘라 내어도 어색하거나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을 그린 《진집》 시리즈에서는 미세한 편집에도 불구, 그 인위성이 극도로 강조된다.
 최수경은 불안한 인물들을 그리지 않는다. 되려 가까운 인물들의 찰나를 포착해, 불안을 끄집어 올린다. 초기 영화에서 제임스 A. 윌리엄슨은 〈커다란 입(The Big Swallow)〉(1901)에서, 주인공의 얼굴을 점점 확대시켜 입이 화면을 가득 메우도록 했다. 이는 카메라를 점점 집어 삼킬 듯 하면서 영화속 인물과 관객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방법이었다.[5] 최수경의 화면들은 초기 영화에서의 클로즈업-관객을 한 인물과 강력하게 동일시되도록 이끌며 얼굴 표정을 통해 감정을 유추하려는 기법-과 닮아 있다.[6] 그러나 이 때의 클로즈업과는 달리, 화면 가득 메운 남성의 얼굴의 감정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포착된 상태의 앞뒤 관계를 유추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진집》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 중, 주름과 뜯어진 상처들이 자욱한 확대된 손, 잘리고 관찰자와 가까워진 화면을 통해 관객은 묘한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본인만이 감지할 수 있는 아버지의 불편한 순간”[7]을 그렸다고 밝혔다. 관객은 이렇게 미묘하게 감정이 진동하는 상태라는 사실을 쉬이 짐작하기 어렵다. 최수경은 본인만이 감각 가능한 가족의 감정을 의도적인 연출, 혹은 특수한 상황을 구축하지 않고 확대하여 마주하게 만든다. 정방형의 ‘답답한’ 캔버스와 클로즈업되어 다가온 인물의 거친 살갗은 불안함을 촉발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침잠과 요철
  《진집》에는 〈구미교 연작〉(2024)이나 〈뽑힌 나무〉(2024)처럼, 풍경을 그리던 그간의 관심이 이어진 작품도 포함된다. 지난 날 작가는 비슷한 구도의 다른 시간대에서 촬영한 장면들을 연이어 그리며 하나의 연작을 선보여왔다. 같은 시리즈로 묶이는 작품들 사이에는 거의 동일한 시점과 장소를 그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인물의 거칠한 표면, 불안을 촉발하듯 머리 윗부분과 몸 끄트러미에서 잘려 나간 구도에서 그려진 그림들에 이어, 갑작스럽게 울퉁불퉁한 흙 표면이 등장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빛을 받은 요철을 잿빛으로 표현된 축축한 흙, 아파트 단지를 장식하는 여린 나무가 뽑혀 나간 이후의 자욱들을 표현한 것이다.
 최수경은 《진집》을 구상하고 그리기 시작하는 시기, 스스로 침잠해갔다. 보는 그대로 충실히 캔버스에 옮겨 내는 특유의 표현 방법, 물감이 어떤 종이에 가장 잘 발색되는지를 낱낱이 기록하는 작가의 습관을 떠올려보면, 냉철하게 파고드는 성격이 작업을 지속시키는 힘이라고 믿어왔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도 세상을 보는 객관적인 눈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왔을 것이다. 청명한 하늘과 반짝이는 물 표면은 까칠한 수변 가장자리의 표면과 인간 피부를 그리는 것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진집》과 지난 작품들과의 차이점은 불안이라는 감정과 상태를 전달하는 표현, 즉 시간이나 무언가가 지나간 이후의 흔적을 그려내고 의도적인 크롭과 확대로 캔버스를 메우는 기법이라고 생각했다. 침잠하는 마음은 작가를 밤의 교각으로 옮기고 무언가를 더욱 가까이 들여다보게 했다. 아주 먼 곳으로부터 비춰진 햇빛 아래, 광활한 풍경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려 했다면, 가라앉는 마음은 사물과 장소를 더 가까이 보게 한다.
 타이어 바퀴의 자국, 나무가 빠져나간 후의 흔적은 작가가 그들을 더 근거리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까운 인물을 그린 〈미필적고의〉(2024), 〈불신〉(2024)에 맞물린다. 우연히 찍힌 예민한 인물의 초상, 도시 공사로 뒤엎인 땅들은 여전히 작가가 연출하거나 의도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날이 선 시선에서 포착되었다.
 그로 인해 《진집》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 삶 속에서 빛이 드러낸 레이어를 쌓아 온 최수경의 작업이 더 넓은 지평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작업실 안팎, 수변 언저리에서의 ‘바라 봄’은 이제 그들이 어떻게 작가에게 ‘보이는지’를 탐구하는 듯하다. 머나먼 풍경에서 상처가 자욱한 가까운 자리를 캔버스 안으로 들여 오며 최수경은 투명하고 매끈한 레이어와 불규칙한 밤의 겉면을 그린다.



[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가감’ 의미 참조
[2] 롤랑 바르트,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p.16
[3] 2024년 11월 25일 작가와의 인터뷰 중
[4] 최수경 작가노트 참조
[5] 자크 오몽, 『이마주』, 오정민 역, 동문선, 2006, p.191
[6] 손보욱, 「사실주의 영화에서의 클로즈업 특성-영화 〈밀양〉과 〈북촌 방향〉을 중심으로」, 씨네포럼, 14, p.145
[7] 2024년 11월 25일 작가와의 인터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