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 (Full House)》



《풀하우스 Full House》
일시 | 2023. 02. 26 - 03. 05, 12:00 - 18:00
장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36길 32-2 102호
기획 | 강다원
참여작가 | 고새, 권주성, 신어지, 혜미
포스터 디자인 | 이준석
전경 촬영 | 권주성
감사한 분 | 집주인

홍제동에 위치한 벽돌주택의 102호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운 실내로 입장할 수 있다. 한 달간의 레지던시 공간으로 운영되었던 이 장소는 누군가의 집이었고 지금도 한 세입자가 살고 있는 공간이다. 집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수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필수적인 조건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각 개인마다 집이 내포하는 의미는 집의 물리적인 상태나 법적인 조건보다도 훨씬 더 분절되어 있다. 집은 우리의 일생을 경유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욕망이나 희망의 대상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장소와 공간에 대한 열망은 자연스럽기에 이러한 동경은 단지 거주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풀하우스》는 원룸레지던시의 첫번째 프로젝트로 전시공간에 대한 갈증을 분해하며 창작의 열망을 낯선 공간에서 구성해보는 것에서 출발했다. 전시공간의 존재와 설비들은 풍요로움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풍족함 사이에는 공백이 존재하고 원룸레지던시는 이러한 빈 곳을 살펴보며 기물들이 채우지 못한 결핍을 창작으로 메워보고자 시도되었다. 약 3주 동안 작가들에게는 불특정한 시간대에 거주자의 상주 여부와 관계없이 기획자 강다원이 거주 중인 홍제동의 원룸에 들어와 머물며 작업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그들은 집을 탐색하며 장소에 누적된 정보를 수집하거나 공간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특성은 작가들에게 익숙한 레지던시의 형식과 닮아 있다. 《풀하우스》는 작가의 방문에서 시작해 작업을 진행하는 경로를 따라가기에 작가가 활동하는 작업공간과 작품을 결부시키는 오픈스튜디오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매번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와 전∙월세라는 비영구적 거주형태로 살아가며 집을 옮겨 다니는 세입자는 닮아 있다. 여러 레지던시와 전시공간을 경유하는 작가는 본인 소유가 아닌 환경들 속에서 나만의 것을 창조해야 하는 고독한 진행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 속에 놓인다. 계약과 얽힌 세입자에게 허용된 유일한 것은 그가 이 곳에 머물렀다는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몇몇 흔적들에 불과하다. 신체와 몇 가지 사물을 제외한 채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공간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며 이주에 관한 미래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의 한 주택 단지에서 월세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도심 내외를 아우르는 이동에 대한 불안과 경계심을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풀하우스》의 참여인들은 모두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살고 있다. 이주와 변화가 익숙한 도시인으로 구성된 작가들은 공간과 장소에 대한 흘러가는 기억과 시간대에 정지 버튼을 누른다. 이로써 전시에 나열된 진행 과정과 작품들은 《풀하우스》를 완벽한 종결로 두지 않고 또 다른 레지던시 혹은 전시공간을 찾아 떠날 것이라는 미래지향적인 여정의 한 점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풀하우스》에 참여하는 작가들을 섣불리 초대객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들은 초대된 사람들과는 달리 마음껏 공간을 샅샅이 탐색하며 자유롭게 드나들기 때문이다. 또한 집주인은 이들을 자연스러운 환대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들은 방문자처럼 집과 원거리에 위치한 타자들이 아니라 누군가의 낯선 공간 속에 녹아 들고자 하는 인물이 된다. 주인 혹은 초대객도 아닌 자들이 익숙하게 도어락을 누르고 전등을 켜고 보일러를 높이고 방을 탐색하는 제3자가 되어 스며든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용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전시는 이 곳이 전시공간이라는 명칭으로 정의되는 것, 내방하여 작업하는 사람들이 작가가 되고 전시를 보러 온 이들이 관객이라 명명되는 것을 재고하고자 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새로운 단어들이 필요하다. 분명 누군가 살고 있지만 ‘내 집’이라 부르기 어려운 전 세입자들의 흔적 속에 숨쉬고 있는 듯한 착각, 개인적인 공간을 오픈함으로써 드나드는 사람들이 취득할 수 있는 낯선 역할들은 일상에서 이탈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 장소에 방문하는 이들에 의해 공간은 계속해서 자극 받는다.